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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Apr 29. 2022

반건조는 어떨까?

속초 살이 6개월이 가까워 온다. 이곳에서 느끼는 첫 즐거움은 영랑호 같은 아름다운 속초 곳곳을 다니며 멋진 풍광을 즐기고 적당히 운동이 되도록 걷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고성, 양양, 강릉으로 발걸음을 넓혀, 이름 있는 곳은 거의 다닌 것 같다. 이제는 강릉 남쪽을 도전해 봐야겠다. 날씨가 도와주면 울릉도, 독도도...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음식이다. 토박이에게 탐문해 저렴하고 실속있는 외식도 간간이 한다. 그렇지만 아침 식사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아내의 의지에 순응해 빠짐없이 먹고 있다. 더군다나 꽤 알아주는 속초중앙시장이 코앞이라 수시로 구경도 하고 먹거리도 산다. 당연히 관심은 해물전 쪽이었다.     


제일 먼저 가자미식해에 도전해 보았고 이어서 곰치국, 도치탕, 복국, 청어회, 오징어회, 가자미 세코시와 미역국, 홍게와 대게찜 까지 꾸준히 우리 집 식탁에서 만났다. 육군이었던 내가 해군으로 바뀌었?

   

그런데 코로나 후유증인가 아내가 속이 불편하고 밥맛을 잃어 장보기 의욕을 잃었었는데 그저께는 갑자기 반건조 생선가게 앞에서 좌판을 한참 관망한다. 시장 입구에 손님이  많은 조금 얄미운 두 가게가 아니라 완전 반대편 입구에서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다.   

  

아내가 물건에 관심을 보이자 여주인이 나선다. 내가 도톰하게 말려진 생선이 뭐냐고 묻자 답변이 걸작! ‘성은 황이요, 이름은 우럭입니다!’. 그 옆에 것은요? ‘민어인데, 먹을 때는 문 꼭 닫고 드셔야 합니다!’ 한바탕 웃음 속에 흥정이 끝났다. 둘 다 마리당 7천 원인데, 6마리는 3만 원이라... 반반 섞어서 3만 원에 샀다.   

나오면서 보니 부세, 코다리, 광어, 가자미 등등 여러 가지 반건조 생선들이 보인다. 신박하게 생긴 을 보고 요건 뭐죠?’라고 묻자 이거 드시면 노래가 잘 나옵니다. 아싸 가오리!’라 한다. 노랑 가오리였다. 통쾌한 하루다. 그 집 장사 대박 나고 두 부부 연배도 꽤 되고 허리도 많이 굽었던데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이윽고 집에 오자마자 우럭을 찜통에 넣는 아내의 손길이 바쁘다. 아무런 간도 하지 않은 우럭찜! 비주얼도 근사하고, 예상치 않았던 맛이다. 국물도 간간하고 살도 푸짐하며 생선뼈도 심플하다. 구수하며 상큼한 비린내와 식감도 좋다. 둘이서 황우럭 한 마리를 게 눈 감추듯이 먹었다.      


오늘은 민어! 똑같은 방법으로 아무 간 없이 심플하게 찜통에서 10분 정도 쪘다. 민어는 조금 소금기가 많았는지 짭조름한데 국물이 조금밖에 안 생긴다. 두 생선의 차이인지 건조상태의 차이인지 잘 모르겠다. 


육식성 어류라서 그런가 살코기가 단단하여 식감과 맛은 역시 준수했다. 조기와 우럭의 중간 정도 같은 느낌이다.

찬물에 밥을 말어서 함께 먹어도 될 것 같다. 우럭보다는 가시가 조금 귀찮고 고기가 미끈거려 젓가락 질 하기가 조금 불편한 게 흠인데... 역시 오랫동안 호남지방 부잣집에서 대접받던 명품 고기인지라 이름값을 한다.    


지난번 양간 산나물에 이어서 민어와 우럭이 입맛 떨어진 아내의 눈을 반짝거리게 했으니 나로선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남은 것 중 두 마리 정도는 간간히 양념을 올려 조림으로 만들어 먹어보았으면 하는 게 내 작은 소망인데 소금기에 민감한 아내가 어쩔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반건조 생선 묘한 력이 있다.  


사실 그냥 생선이나 반건조 생선, 종류도 가릴 것도 없다. 육식에 찌들었던 장년들에게 제철 생선은 얼마나 좋은가? 오래오래 즐겨야겠다. 몇 해 전 이서진 씨가 내레이션 한 EBS 다큐 ‘생선의 종말이 조금 걱정되나 그렇게 되겠어! 생선은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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