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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성격장애와 관계 맺기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어떤 관계든 불안은 존재한다. 사랑은 흔들리고, 우정은 시험당하며, 가족 안에서도 이해는 어긋난다. 그러나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과의 관계는 이 불안정함이 관계의 핵심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단순히 감정적이고, 민감하며, 화를 자주 낸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랑의 전제가 바닥에서부터 불안정하게 깔려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당신이 누구인지,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 자체가 매 순간 위태로워지는 경험이다.


이들에게 관계는 살아 있는 고통이다. 애착은 갈망과 불신으로 얽히고, 친밀함은 버림받음의 공포로 뒤바뀐다. 그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 이상의 것을 건다. 그것은 바로 존재의 핵심이다. 그래서 그 절박함에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오히려 밀쳐내는 행동들이 반복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이 역설이야말로 경계선 성격장애 관계의 본질이다.


이쯤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건강한 관계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건강한 관계란 서로가 자율적이고 안정적이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관계는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이지, 당연 조건은 아니다. 특히 경계선 성격장애를 겪는 이들과 관계를 맺는사람은 ‘자기 보호’과 ‘타인 수용’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때때로 너무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고 느낄 것이며, 자신의 존재가 마치 그들의 감정 처리반처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의도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연결의 방식이다.


여기서 관계는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훈련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상대의 감정이 진실한가 아닌가를 따지기보다,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들의 화와 분노가 당신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반응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연습이다. 과잉 대응도 회피도 아닌, 고요한 버팀을 통해 관계는 서서히 건강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격렬한 감정 폭풍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무관심하지 않는 태도. 그것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되,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의 고통에 책임이 있는가? 나는 이 고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관계 안에서 나 역시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은 도덕적 질문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이다. 자기 존재를 잃은 관계는 어떤 이름으로도 지속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과의 관계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긴장 속에서, 서로의 파괴 충동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그들은 당신을 상처 입히려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 긴장 속에서 당신이 ‘도망치지 않음’을 통해 보여주는 사랑은 말보다 더 큰 안정감을 줄 수 있다. 동시에 이 관계 안에서 소진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경계를 정립해야 한다.


이 관계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연속적인 실패, 오해, 후회의 연쇄다. 하지만 그 안에서 가능해지는 것은 어쩌면 다른 어떤 관계보다 더 진실한 애착일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 없는 세계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은 매일 새롭게 반복되어야 하며, 때로는 나 자신을 위해 그 선택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관계가 실패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것은 계속되는 질문이며, 그 질문이야말로 인간 관계의 가장 근본적인 실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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