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이야기
중년의 사랑은 젊은 날의 사랑처럼 서두르지 않고, 섣불리 타오르지도 않는다. 겉보기에 조용하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고요함 안에는 시간과 삶의 무게가 들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더 복잡해지지만, 동시에 더 단순해진다. 이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보다 내면의 울림이 중요해지는 나이. 그런 사랑은 겉보기에는 잔잔해 보이지만, 실은 더 깊고 단단하다.
이 나이의 사람들은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또 무엇이 아닌지를 조금은 안다. 어릴 땐 그 사람 없이는 죽을 것 같다고 느끼지만, 중년이 되면 그 사람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이다. 선택의 자유 속에서 택하는 헌신, 결핍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 아닌, 충만함을 나누기 위한 사랑. 그래서 이 나이의 사랑은 덜 아프고 더 느리며, 오히려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품는다.
젊은 날의 사랑은 서로를 마주 보는 일에 집중되지만, 중년의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데 더 많은 가치를 둔다. 상대를 통해 나를 보려 하지 않고,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조용히 알아간다. 더 이상 '나를 완성시켜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도 나, 당신도 당신으로 좋길 바란다'는 식이다. 중년의 사랑은 이렇게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며, 두 개의 삶이 부딪히지 않고 어깨를 맞대는 방식으로 지속된다.
이 시기의 사랑에는 회피가 없다. 아니, 회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틈을 가리는 법을 익혀 왔지만, 결국 그것들이 균열을 낳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래서 오히려 상처를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사랑하면서도 두렵고, 애정 안에서도 고독하며, 가까워질수록 불안을 느낀다. 그런 감정들에 솔직할 수 있을 때, 그제서야 사랑은 관계가 아닌 존재로 자리 잡는다. 중년의 사랑은 그렇게, 서로를 바꾸려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상처와 무게를 함께 끌어안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 사랑은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애써 증명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 산책을 나가고, 각자의 커피를 마시고, 저녁 무렵 창밖을 바라보며 ‘좋다’는 말을 나누는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다. 말보다는 기색, 설명보다는 기운, 논쟁보다는 침묵.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말하지 않아야만 유지되는 예민한 거리를 지키는 감각. 그건 단순한 편안함이 아니다.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나 자신을 경계하는, 긴장 속의 신뢰다. 그 조율 속에서 사랑은 자라난다.
사랑은 이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된다. 함께 살든, 따로 살든, 그가 곁에 있든 없든, 사랑하는 방식은 곧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지를 통해 사랑이 구체화된다. 그래서 이 나이의 사랑은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느냐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중년의 사랑은 젊은 날의 사랑보다 덜 낭만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덜한 낭만 속에 더 깊은 감각이 있다. 중년의 사랑은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다. 식탁을 차리고, 약속을 지키고, 불안을 토로하고, 사소한 오해를 풀며, 잊지 않고 다시 손을 잡는 일이다. 그것은 살아가는 방식이며, 우리가 아직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조용한 선언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단단하고 가장 부드러운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