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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선생님도 저한테 실망하셨죠?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선생님도 저한테 실망하셨죠?”라는 말은 상담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사실, 이 말에는 내담자 자신을 향한 깊은 불안이 숨겨져 있다. 내담자는 실제로 상담가가 실망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학적인 감정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앞에 있는 상담가에게 투사한다. 그 순간 상담가는 내담자의 내면에 자리한 ‘비난하는 목소리’의 발화자가 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라고 한다. 내담자는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평가의 감정을 견딜 수 없을 때, 그것을 언어와 행동으로 상담가에게 옮긴다. 상담가는 자신이 내담자를 비난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지만, 이는 정말로 그래서가 아니라, 내담자의 심리적 에너지가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상담가에게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이를 통해 잠시나마 내면의 가혹한 목소리에서 벗아나지만, 동시에 “상담가도 결국 나를 싫어할 거야”라는 예견된 실패의 공포에 빠진다. 그 결과 상담은 단순한 대화의 공간이 아니라, 내면의 심판대가 다시 재연되는 무대가 된다.


상담가는 이때 직접적인 반박이나 위로로 대응하기보다는, 내담자가 만들어내는 이 ‘가상의 평가자’를 함께 관찰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실망은 제 것이 아니라, 당신 안의 어떤 목소리로부터 온 것 같아요”라는 식의 피드백은 내담자에게 현실 검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상담가가 그 순간 내담자의 두려움을 ‘견뎌주는’ 존재로 함께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내담자는 스스로를 벌하는 내적 비난과 오랫동안 싸워왔고, 상담가 역시 결국 자신을 떠나거나 평가할 것이라는 운명적 확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상담가가 그 두려움 속에서도 관계를 지속해주는 경험은 내담자에게 최초의 다른 가능성을 일깨워준다.


이 두려움의 근원에는 종종 사랑받기 위해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내담자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과 수용이 무조건적이지 않았던 경험을 통해, 실망시키면 버려질 것이라는 내면화된 규칙을 배운다. 그 규칙은 이제 무의식 속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하며, 새로운 관계에서도 자신이 또다시 실망을 줄까 두려워 상대의 감정을 미리 예측하고 통제하려 한다. “선생님, 실망하셨죠?”라는 말은 상대의 감정을 확인하려는 질문이 아니라, 사실상 “제가 저를 벌주기 전에, 먼저 당신이 저를 벌해주세요”라는 무의식적 요청이기도 하다. 이때 내담자가 느끼는 불안은 실제 관계의 불확실성보다, 자기 내부의 완벽주의적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담실은 이 폭력을 해체할 수 있는 안전한 실험 공간이 된다. 내담자가 두려움 속에서 “선생님은 이제 저를 싫어하실 거예요”라고 말할 때, 상담가가 즉각적인 반응 대신 조용히 그 감정의 근원을 탐색하는 순간, 내담자는 ‘판단’이 아닌 ‘탐색’의 관계를 처음으로 경험한다. 상담가가 내담자의 실패나 결핍을 진단하지 않고, 그저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함께 바라볼 때, 내담자는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운다. 이때 내담자의 내면에서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자기 안의 비난하는 목소리가 절대적 권위를 잃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지 상담가가 친절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담가는 내담자가 던지는 비난과 불안을 실제로 느끼고도 그 감정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내담자가 “제가 선생님을 실망시켰죠?”라고 말할 때, 상담가 안에도 순간적으로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감정이 일어나지만, 그 감정을 곧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관찰된 감정으로 다루는 훈련이 필요하다. 상담가의 이 침착한 메타인지적 태도는 내담자에게 새로운 감정 모델을 제시한다. 즉, 감정을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다. 내담자는 상담가의 이런 태도 속에서 자신에게도 동일한 심리적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배운다.


이 작업은 자기 비난의 내면화된 회로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내담자가 느끼는 상담가의 실망은 실제로 상담가의 것이 아니라, 내담자 안에 고착된 자기 비난의 반향이다. 상담가는 그 반향의 진동을 함께 들으며, 그것이 더 이상 자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돕는다. 상담 장면은 내면의 재판정이 아니라, 감정이 다시 의미를 얻는 공간이 된다. 내담자가 상담가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관계 안에 머무를 수 있을 때,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 그것은 ‘실망당하지 않을 자신’을 만드는 변화가 아니라, ‘실망당하더라도 관계가 끝나지 않는다’는 새로운 믿음을 배우는 변화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써 내려간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평가받으며 살아가지만 그 시선의 대부분은 사실 내면화된 타인의 잔상이다. 상담은 그 잔상이 실체 없는 그림자임을 드러내는 과정이며, 그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가능성을 얻는다. “선생님은 저한테 실망하셨을 것 같아요”라는 말은 더 이상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라, 자기 안의 비난을 외부로 꺼내어 직면하려는 용기의 언어로 바뀐다. 그리고 그 용기 속에서, 내담자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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