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하이데거(1889-1976)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의 철학자로 존재에 관한 사상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강조했습니다.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그는 불안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을 정초하였습니다. 과연 불안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요? 하이데거는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그는 불안을 우리가 존재의 불확실성에 직면할 때 발생하는 실존적 기분으로 설명합니다. 불안은 우리의 진정한 삶에 관한 더 깊은 물음을 던져줍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성공과 성취를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숨 쉴 틈 없이 흘러가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갈 뿐.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정신 없이 살아가는 동안 본래의 고유한 나 자신은 사라지고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공장 속의 수많은 로봇 중 하나가 됩니다. 세상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존재는 망각됩니다.
이토록 무의미한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극적인 것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SNS, 유행, 소비, 향락, 다양한 중독성 물질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해방감만을 줄 뿐 우리를 더욱 본래의 삶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을 주지만 인간을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우리에게 문득 불안이 찾아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커집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종종 숨 쉬기 조차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 세상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왜 불안한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불안은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정체 모를 불안이 심리상담에서는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사회불안, 공포증, 우울증, 신체화를 비롯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 불안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될 걸까?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도대체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불안의 한가운데서 그 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봅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불안은 우리의 인생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해줍니다. 그 순간 우리는 그동안 로봇처럼 살아왔던 존재자(das Seiende)의 세계에서 벗어나 본래의 존재(da Sein)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불안은 일상의 평온을 뒤흔들어 타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바깥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를 괴롭혔던 불안이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한 재구성의 요청임을 깨닫게 됩니다. 불안은 그동안 기계처럼 반복되었던 무의미한 일상에서 우리를 꺼내 줍니다. 그리하여 본래의 우리 자신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불안은 진정한 자신을 찾으라며 부르짖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불안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삶에 물음을 던지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