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태열이라고 했다. ‘태열이라. 내가 어릴 때 태열이 있었는데 나를 닮아 그런가보구나.’ 의사가 알려주는 방법을 주의 깊게 듣고 병원을 나왔다. 오는 길에 태열이 맞나 의심했다. 만약 증상이 더 심해지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두려운 마음이 훅 엄습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볼까? 맘카페에 들어가 정보를 좀 찾아볼까? 이내 그만 두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21세기에 태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태열이라고 했던 아이의 피부는 돌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태열이라고 무심히 말했던 의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바꿔 아토피라고 했다. 아토피와 태열은 다르지 않은가! 역시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 전문 자격증을 가진 의사의 눈보다 나의 감이 더 정확했다. 형편없는 의사를 향했던 분노는 금새 나에게로 향했다. 그때 느꼈던 불안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심해서,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 더 좋은 병원으로 갔어야 했다. 안일하게 아이를 돌봤다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 없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병원을 나와 인터넷과 지역 맘카페를 뒤져 좋다는 방법, 재료, 화장품 등을 찾아냈다. 모든 방법들을 하나씩 다 시도하고 좋다는 제품도 다 사용했다. 늘 집의 온도를 서늘하게 하고 습도에도 신경 썼다. 하지만 아이의 피부는 좋아지지 않았다. 조급해져 집안을 더 열심히 청소하고 모든 물건들을 소독했다. 아토피는 먹는 것도 가려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안에 있던 모든 간식을 내다 버리고 내가 직접 간식을 만들었다. 다행히 이런 노력들로 아이의 아토피는 조금씩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역시 내가 맞았어.
아이가 좀 자라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보낼 수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음식과 간식은 분명 아토피를 더 악화시킬 것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집에 데리고 있기로 했다. 아침이 되면 집안을 환기시키고 청소하고 소독을 했다. 그 다음 아침을 준비해서 먹이고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었다. 점심을 먹인 후 간식을 만들었다. 그동안 아이는 혼자 텔레비전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아이가 간식을 다 먹으면 쌓인 설거지를 했다. 아이가 어지른 집을 치우고 정리했다. 저녁을 먹인 후에는 씻긴 후 보습에 도움 되는 로션을 듬뿍 발라주고 책을 읽어주며 재웠다.
늘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시어머니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것만큼은 잘했다고 칭찬했다. 어머니 역시 심한 아이 피부가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평온하게 흘러가던 우리의 일상은 아이가 다섯 살이 되면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