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30분.
시간을 확인하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거실 불을 끈 후 안방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침대에는 남편이,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위에는 아이가 누워 자고 있다.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닫고 아이 옆에 조용히 누웠다.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너무 귀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 아이의 하루 중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다 그만두었다. 너무 적은 그 시간을 따져 무엇하랴.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생각처럼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죄책감과 미안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새벽 3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 6시 30분.
알람이 울리자 재빨리 껐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일어나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알아챈 아이가 금방 깼다.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와 다시 아침 준비를 했다.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씻긴 후 어젯밤에 꺼내 놓았던 옷을 하나씩 입혔다. 아이에게 옷을 다 입혔을 즈음 남편이 일어났다. 어린이집 등원은 남편의 일이다. 대충 씻은 남편은 아이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경희는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로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종합병원의 근무는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급여가 괜찮기에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볼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고 계셨고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순간 지출할 돈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경희와 남편은 시간제 이모님을 찾아 고용하기로 했다. 첫 면접 때 이모님은 자신의 근무 조건을 조목조목 설명하셨다.
“저는 간식은 꺼내줄 수 있지만 준비는 하지 않아요. 어머니께서 냉장고에 넣어두시면 먹이고, 없다면 따로 챙겨서 먹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초콜릿, 과자를 달라고 하면 저는 줍니다. 또 아이를 돌보고 보호하는 일을 할 뿐, 훈육에 관여하지 않아요. 그러니 아이가 초콜릿, 과자를 먹지 않아야 한다면 보이지 않도록 치우세요. 또 저녁은 남편분께서 주신다고 했으니 저는 챙기지 않겠습니다. 아이 병원 진료도 하지 않아요. 아이가 아프면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오실 때까지 데리고 있는 것만 합니다.”
조목조목 설명하는 이모님을 보며 숨이 턱 막혔지만 한 편으로 이해도 되었다. ‘그래. 내 아이를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면 괜찮다. 간식 내가 준비하면 되지. 아이가 군것질 좀 하면 어떤가. 저녁은 남편이 와서 차려주면 되니까.’ 이모님의 조건에 합당한 이유를 찾은 후 고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원칙대로 일하는 이모님을 보면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어린이집 교사 학대 기사를 읽게 되면 서운함보다 감사함에 안도했다.
오늘 근무는 *이브닝이다. 이브닝 근무는 2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그때까지 아침 설거지, 아이 간식, 빨래 정리까지 해야 한다. 분명 새벽까지 집안일을 했는데 참 이상했다. 아침이 되니 또다른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잠시, 빨리 움직여야 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할 일의 순서를 정한 후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
모든 집안일을 끝내고 급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속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발랐다. 얼굴에 바른 건 선크림이 전부고 머리카락은 젖어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머리카락은 가는 동안 다 마를 것이고, 일하다 보면 화장은 땀으로 다 지워질 것이다. 지상에 주차된 오래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바쁜 출근길이지만 잊지 않고 커피숍에 들러 동료들의 커피를 포장했다. 어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놀다 넘어져 이마에 멍이 들었다. 어린이집 연락을 받았지만 당장 아이에게 갈 수 없어 속상했다. 그때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몇 시간 일찍 들어가도록 배려해주었다.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자꾸만 주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미안한 일이 생겼다. 늘 마음이 불편했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부탁하고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아이는 참 신기한 존재다. 아이가 생기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그러기 위해 좋은 집 아니 우리집이 필요했고 좋은 차도 필요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얼굴에 다크서클이 짙어지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늘 잠이 부족하지만 괜찮다. 우리집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경희는 입을 앙 다물고 양손에 커피를 들고 병원으로 출근한다.
* 종합병원 3교대 근무시간(병원마다 시간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데이 근무시간: 6:30~15:00
이브닝 근무시간: 14:30~23:00
나이트 근무시간: 22:30~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