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예민한 엄마가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by 모개

저녁이 되면 침대 머리맡에 커다란 쿠션을 가지런히 세워둔다. 침대 옆 테이블에 분유, 젖병, 보온병을 올려놓고 물티슈, 휴지, 손수건 등 필요한 물건도 챙겨둔다. 다리를 덮을 수 있는 이불까지 놓아두면 준비는 끝이다. 아이를 안고 천천히 움직이며 수면등을 켜고 불은 끈다. 침대 위로 올라가 쿠션에 기대 앉은 후 발가락으로 이불을 움직여 다리 위에 걸쳐 놓고 배 위에 아이를 올려놓는다. 아이가 잠들면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다 깨기를 반복한다. 새벽 즈음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깬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아, 깼구나. 언제 다시 재우지?’ 순간,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점점 커져 덮쳐온다.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심장 박동과 호흡이 빨라진다. 급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다시 눈을 뜬다. 아이는 내 배 위에 안겨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엄마라는 사람이 자기 아이를 무서워하다니!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가 여전히 아침이 오려면 멀었다는 사실에 두려워져 아이를 안은 채 훌쩍훌쩍 울어버린다. 아이를 낳은 후 밤마다 반복되는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막막하다.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가지 않았다. 아니 못 갔다. 비싼 조리원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정부 지원 산후도우미를 신청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출산 전 읽어둔 책과 노련한 산후도우미의 실력을 믿었다. 출산 후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고 퇴원했지만 모유는 잘 나오지 않았다. 자꾸 물려야 양이 늘어난다는데 아무리 물려도 모유의 양은 늘지 않았다. 아이는 부족한 모유 때문에 배가 고파 울었다. 급한 마음에 분유를 사서 먹였지만 다 토했다. 토사물을 닦아내면 배고파 울고, 다시 분유를 먹이면 또 토했다. 믿었던 산후도우미도 이렇게 토하는 아이는 처음 본다며 난감해했다. 열심히 트림을 시켰지만 트림 소리 듣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하루종일 먹이고 토사물 치우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이건 밤잠 재우기에 비하면 괜찮았다. 산후도우미가 없는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밤은 너무 길었다.


다들 아이를 잘만 키우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그렇다면 내 잘못이구나. 하지만 자책만 할 수 없었다. 나는 엄마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때부터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비록 다 토했지만 분유 먹인 시간과 양, 소변과 변의 상태를 기록했다. 누워서 자는 건 아니지만 수면시간도 기록했다. 인터넷, 책, 지역 맘카페 글도 모조리 찾아 읽었다. 하지만 토하고 누워서 잠들지 않는 것 외에도 신생아 육아는 변수와 돌발상황의 연속이었다. 토한 아이를 침대에 눕혀놓고 토사물을 치우던 어느 날, 버둥거리던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토사물 묻은 손수건을 던지고 우는 아이를 급히 안았다. 처음 들어보는 커다란 울음소리에 심장이 요동쳤다. 핸드폰은 거실 어딘가에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어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아이가 괜찮은지 눈으로 살피며 여전히 토사물이 묻은 손으로 아이를 토닥였다. 이 상황 앞에서 빼곡하게 적어 놓은 메모와 인터넷 육아 지식은 힘을 잃었고 나의 몸과 뇌는 멈춰버렸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무서운 마음에 눈물만 흘렸다. 매일 하나의 상황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상황을 마주했다. 통잠이니 백일의 기적이니 그런 걸 바란 것이 아니었다. 어쩜 이렇게 다 토하고 단 1분도 누워서 자지 않는단 말인가. 어릴 때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지금 벌 받는건가? 아니면 전생에 죄가 많은걸까? 토하고 안 자는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왜 이런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더 힘들었다.


알고보니 이 모든 것은 예민한 기질 때문이었다. 거기에 오감까지 예민했다. 오 마이 갓! 태어나 처음 먹은 모유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먹은 분유 맛은 이상했다. ‘보통의’, ‘일반적인’ 수식어가 붙은 분유였지만 내 아이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거기에 예민한 위장까지 분유를 거부했다. 미각 뿐만 아니라 촉각도 예민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있다 바닥에 눕기까지 그 찰나의 온도 변화를 느꼈다. 토사물로 자주 교체된 이불의 촉감이 매번 다른 것도 알아차렸다. 하나에 적응하기 전에 바뀌는 변화가 낯설어 힘들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울음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상담 후에야 아이만큼 나도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몸짓, 표정, 반응을 온 몸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제어할 수 없어 당황스럽다 못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늘 하던 대로 상황을 분석해 답을 얻으려 했지만 육아는 정답이 없었다. 계속 턱턱 걸려 당황하고 좌절했다. 자라는 과정의 하나로, 조금 더 지켜보는 걸로, 어르고 달래주는 걸로 해도 되는데 모든 걸 다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했다. 이 모든 걸 빨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질을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예민한 기질을 아는 것만으로 모든 고난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신생아 육아는 예민한 우리 모녀 이야기의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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