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엄마가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를 바라본다.
'신이시여! 내 아이에게 힘을 주소서!'
불행히도 기도는 신에게 닿지 않았다.
그들을 원망할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사람이 죽으란 법 없다.’ 던 조상님의 말은 옳았다. 먹는 대로 다 토하고 누워서 절대 자지 않던 아이가 100일의 기적을 선물해 주었다. 모유가 덜 토한다는 말을 듣고 50일부터 다시 시작한 모유 수유로 아이의 토함이 잦아들었다. 정확하게 71일부터 낮, 밤잠 모두 누워서 잤다. 심지어 한 번도 깨지 않는 ‘통잠’을 자기도 했다. 100일이 넘어가자 먹는 것, 자는 것, 싸는 것이 규칙적으로 딱딱 맞았다. 그토록 내가 원했던 규칙적이고 예측되는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늘 쌓여 있던 빨래, 설거지가 사라지고 집안도 깨끗해졌다. 첫 이유식 시작을 앞두고 잘 먹지 않고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이는 밍밍한 쌀미음부터 잘 받아 먹었다. 이즈음 유두 습진이 심해져 모유를 끊고 분유로 바꿔야 했는데 되직한 형태의 이유식 덕분에 분유를 먹여도 토하지 않았다. 이유식, 분유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아이를 보며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한껏 차올랐다. 하지만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릴 것 같던 나의 육아는 이유식 중기를 시작하며 내리막길을 걷기, 아니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유식 중기를 시작하자 지독한 변비가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유식이 점점 되직해지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분유를 좀 진하게 타 먹이면 좋다.’,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먹이면 좋다.’는 조언에 다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병원에서는 푸룬을 추천했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푸룬을 갈아 먹이니 용을 쓰며 대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딱해진 변은 잘 나오지 못했고 결국 면봉으로 대변 파내기를 반복했다. 대변을 면봉으로 빼내는 날이면 아이도 지쳐 오랫동안 잠만 잤다. 예상치 못한 변비 전쟁은 규칙적으로 자리잡은 우리의 일상을 흔들었다.
푸룬을 먹여도 변비가 해결되지 않자 실력만큼 비싸기로 유명한 한의원을 찾아갔다. 인터넷에 한약을 처방받아 먹이면 좋다는 글을 본 직후였다. 오랜 시간 대기 후 만난 한의사는 기대와 달리 아직 어려 한약을 먹일 수 없다고 했다.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몇 번의 침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마지막 침 치료를 받고 밖으로 나오니 초록빛으로 물든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벌써 여름이네. 세상은 온통 초록빛인데 내 마음만 잿빛이구나.” 혼잣말을 하다 울컥 눈물이 났다.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죄책감은 또 '엄마 자격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눈에 고였던 눈물은 순식간에 흐르기 시작했고 곧이어 엉엉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울었다. 내 울음소리에 아기띠에 안겨 있던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말간 아이의 얼굴과 눈빛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에 가자.” 아이 엉덩이를 토닥이며 콧물과 함께 남은 눈물을 삼켰다.
다시 푸룬을 믹서기에 갈아 먹이고 아이 엉덩이만 바라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엉덩이에 힘을 주는 것 같으면 주먹을 꼭 쥐고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기도했다. 제발 내 아이에게 힘을 달라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그때마다 아이를 안고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기로 항문 마사지를 해주거나 면봉으로 파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12일 째 대변을 보지 못했던 어느 날, 배가 아파 우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 한 쪽 침대에 우는 아이를 눕혀 놓고 양팔을 잡은 후 항문을 꽉 막고 있는 대변 덩어리를 간호사와 함께 파냈다. 얼굴은 눈물로, 몸은 땀으로 범벅된 채 병원을 나오는 나의 손에는 시럽 변비약이 들려있었다. 이 날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한의원을 나왔던 그날처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아이는 병원에서 처방해 준 변비약, 10만원이 넘는 고가의 유산균, 푸룬, 식단 관리로 4~5일에 한 번씩 근근이 대변을 쌌다. 예전에 비하면 4~5일이 어디냐 싶어 감사했지만 그것도 잠시 배변 훈련을 시작하며 지옥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이의 대변 활동에 따라 내 기분도 널뛰었는데 대략 이랬다.
첫째 날(대변 싼 날): 세상이 온통 아름답다.
둘째 날: 아직은 여유롭다.
셋째 날: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넷째 날: 걱정을 넘어 짜증이 몰려오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다섯째 날: 숨쉬기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여섯 째 날: 아이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너 안 하면 병원 갈거야!”
일곱 째 날: 아이를 붙들고 사정하다 소리 지르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아이는 힘겹게 대변을 쌌다. 변비약, 유산균, 푸룬 주스,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식단까지. 뭘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이 악순환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불안감이 나를 점점 집어삼키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다.’는 말은 맞다. 고리타분하다고 느꼈던 조상님들의 말씀이 이렇게 위대한 진리라는 걸 육아를 하며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걸리는 시간이 사람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예민하지만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이제는 좀 시들해진 MBTI로 말하면 나는 E성향의 사람이다. 친구들도 많고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노는 것도 좋아한다. 학창시절 내내 반장, 부회장도 도맡았다. 웅변대회,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고 전교생 앞에서 노래, 피아노 연주, 지휘를 하기도 했다. 새로운 것을 만나면 긴장했지만 짜릿한 설렘을 더 많이 느꼈기에 도전 앞에 두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고 익숙해지기까지 평균적인 시간보다 더 오래 걸렸다. 설렘보다 긴장감에 압도되어 괴롭고 힘들었다. 편안하고 안정적이던 엄마 배속에 있다 나온 세상의 모든 것은 아이에게 공포였다. 배고픔보다 모유와 분유 맛의 차이를 더 먼저 알아차렸다. 매일 달라지는 이불의 촉감은 쏟아지는 잠도 쫓아낼 정도였다. 이제 분유와 이불의 촉감에 익숙해졌다 싶은데 기저귀에 닿는 대변의 감촉이 달라졌다. 덩어리진 것이 툭 떨어질 때의 느낌, 그것이 엉덩이에 닿는 느낌, 대변의 온도는 당황스러웠다. ‘다름’이 ‘이상한 것’이 되자 대변이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을 거부했다. 대변을 참고 참다 내보낼 때 배, 항문이 아팠지만 ‘이상한 것’ 보다 나았다. 이상한 대변도 적응 안 되었는데 만난 변기의 촉감과 온도는 충격적이었다.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새로운 것들은 숨 막혔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좋아하는 어린이집 친구들은 즐겁게 변기에 앉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런 친구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며 아이에게도 할 수 있다며 격려했다. 매일 고통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손을 잡고 애원하던 엄마의 얼굴도 생각났다. 용기 내 참지 않고 처음 변기에 대변을 본 순간, 동동 떠 있는 대변을 보며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하던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아! 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구나.’ ‘변기에 앉아 대변을 보니 사랑하는 엄마가 저렇게 기뻐하는구나.’ 그때 아이는 변기에 대변을 보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그녀의 변(便)에 대한 그녀의 변(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