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엄마가 예민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안방 벽 위로 귀여운 꼬마 스티커가 하나씩 붙여진다. 스티커를 나란히 줄 세워 붙인 아이가 뒤돌아 방긋 웃는다. “엄마. 사이좋게. 뽀뽀. 사랑해요.” “그러네. 사이좋게, 사이좋게……,”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데 너는, 너는 왜 친구들과 사이좋게 못 지내니?’
아이를 낳은 후 틈만 나면 육아서를 뒤적였다. 내 아이가 책에서 말하는 발달 과정에 맞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이의 발달이 개월 수에 맞는다 싶으면 안도했다가 조금 늦는다 싶으면 초조해졌다. 매일 불안과 안도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힘든 육아로 지쳐있던 나에게는 찰나의 행복보다 안도의 힘이 더 셌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만은 내려놓을 수 없었다. 아이는 말이 느렸다. 남편과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이상함을 넘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기 전 나의 직업은 논술 교사였다. 지방 도시였지만 나름 지역에서 잘나가는 강사였다. 엄마들 사이에서 ‘아이를 3개월만 맡기면 책을 줄줄 읽고 글을 뚝딱 써낸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책을 싫어하던 아이도, 입도 벙끗 못하던 아이도, 글 한 줄도 못 쓰던 아이도 나를 만나면 달라졌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했고, 열정적으로 수업했다. 수백 명을 가르친 경험이 있기에 내 아이 한 명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전생의 죄까지 들먹일 정도로 힘들었던 신생아 육아 때도 책은 놓지 않았다. 힘들고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날에도 끊임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 아이가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 자식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더니. 이번에도 조상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기가 막혔지만 어쩌랴. 다시 나의 장점을 발휘해 인터넷 정보를 뒤지고 병원도 찾아갔다. 그럼에도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러다 말이 확 트이기도 한다’, ‘언어 발달 지연까지는 아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럼 좀 더 기다려보자고, 내가 더 많이 말해주고 책도 더 자주 읽어주자고 다짐했다. 그러다가도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아이를 보면 걱정을 넘어 답답함과 짜증이 몰려오곤 했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아니! 네 엄마가 책 읽기, 말하기, 글쓰기만큼은 전문가라고! 그런데 너는 왜 말을 안 하는 거니? 도대체 뭐가 문제야?”
2016년 봄, 아이가 14개월이 되었을 때 경제적인 이유로 갑자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다. 말이 느려 걱정이었지만 11월생이니 또래보다 좀 늦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느린 말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는 친구들처럼 ‘하지 마’, ‘빨리해’, ‘나도 줘’, ‘나도 할래’ 같은 말을 하지 못했다. 미끄럼틀 순서를 기다리다 앞 친구가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확 밀었다.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고 싶은데 말을 못 하니 팔을 콱 물거나 할퀴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하셨고 나는 죄인이 되었다. 다음 날이 되면 약국에서 산 비싼 연고를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내 아이로 인해 다친 아이의 엄마에게 정수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일하다 핸드폰에 어린이집 번호가 뜨면 ‘오늘은 또 누굴까?’ 싶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친구를 아야! 하게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시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또 친구들을 아프게 했다. 2017년 겨울의 어느 날, 안방 벽 위에 아이가 스티커를 나란히 붙였던 날, 아이가 또 친구를 물었던 날, 이로써 아이가 반 친구 모두를 물고 밀고 할퀴게 되었던 날. 나는 스티커를 붙이는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다 어린이집 퇴소를 결정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린이집은 퇴소했지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지역 맘카페를 뒤지고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 평이 좋은 어린이집을 찾았다. 여전히 말이 서툰 아이를 새로운 곳에 적응시켜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기존 어린이집에 다시 보낼 수도,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역시나 새로 바뀐 어린이집 적응은 쉽지 않았고 여러 문제가 생겼다. 그래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을 물거나 때리는 행동만큼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말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누구든 때리거나 아프게 하면 안 된다는 걸 학습한 결과였다. 지금 5학년인 아이는 말을 아주 잘한다. 가끔은 너무 잘해서 내 말문을 턱턱 막히게 한다. 어디서든 ‘야무지게 말 잘한다’, ‘우물거리지 않고 정확하게 말한다’, ‘어쩜 발표를 이리 잘하냐’는 칭찬을 듣는다. 그렇다면 아이는 왜 말이 더뎠을까? 의사의 말처럼 때가 되어 자연스럽게 터진 것뿐일까?
나도 아이처럼 예민한 사람이다. 불안도 역시 높다. 특히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도가 높아서 통제를 통해 낮추고는 했다. 그런데 육아는 불확실성의 연속으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백일의 기적이 찾아와 아이가 규칙적으로 먹고 자기 시작했지만, 곧 극심한 변비라는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까 두려웠다. 일상이 흔들렸고 감정도 함께 휘청거렸다. 살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음식, 간식, 장난감, 수면 패턴 등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사실을 토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아이가 눈만 비벼도 애착이불로 감싸 안아 재웠다. 촉각이 예민한 아이인 만큼 아침에 눈을 뜨면 분유를 먹이기보다 먼저 기저귀를 갈아줬다. 밥을 차려줄 때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미리 착착 배치했다. 아이가 음식물을 흘리기 전에 재빨리 음식을 입에 넣어주었다. 간식 서랍장 앞으로 간다 싶으면 달려가 서랍장에서 간식을 꺼내줬다. 현관 앞에 서 있으면 신발을 신겨 산책을 나갔다. ‘아이를 위해 알아서 척척 해주는 나는 참 좋은 엄마구나.’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자신감이 차올랐다. 하지만 아이는 숟가락질하는 법, 필요한 것을 말로 요구하는 법, 상대와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의 불안도와 함께 아이의 발달은 한없이 낮아졌다.
새로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은 부원장으로 경험과 노하우가 많았다. 한동안 아이를 관찰하고는 짚이는 게 있다는 듯 내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 엄마가 알아서 다 해주시네요. 그럼 아이는 말할 필요를 못 느끼죠. 아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까지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배워야 해요. 필요한 것을 말로 표현하고 성취해야 자기효능감도 올라가죠. 숟가락질, 신발 신기 같은 것도 스스로 해보는 게 좋아요. 처음에는 잘 안되고 힘들겠지만 그렇게 배우는 거죠. 엄마는 인내심을 갖고 응원해주며 기다려줘야 하고요.”
모든 일에 서툰 아이가 낑낑거리며 무언가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웠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아이를 위해 내가 해주면 되는걸’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믿고 따라보기로 했다. 솔직히 그때는 다른 방법도 없었다. 잘 안된다고 울고 짜증내도 스스로 하도록 격려하고 기다렸다. 단추를 끼우고 신발을 신는 어설픈 손동작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땐 단어로라도 말해야 들어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봇물 터지듯 아이의 입에서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말을 잘하게 되었고 친구들을 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아!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던가. 선생님의 조언은 까맣게 잊혀졌다. 그 후 알아서 척척 해주는 엄마는 다시 불쑥불쑥 아이 앞에 등장했고 우린 또 다른 어려움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