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는 엄마가 보이는데,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엄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물 밖으로 나왔을 때 물로 가득 찬 배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힘겹게 숨을 토해낸 후 눈을 떴을 때 엄마가 보였다.
그토록 부르고 잡고 싶었던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던가? 아니면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내 옆에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그때부터였다.
샤워기 물은 괜찮지만 고여 있는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싫었다.
어린 시절 목욕탕에 자주 다녔지만 온탕, 냉탕에 몸을 담근 적은 없다.
부모님과 물놀이를 가면 수영복은 입었지만 물 속에 들어가 튜브를 타고 놀지 않았다.
고등학교 제주도 수학여행 때 일부러 친구들 가방, 지갑, 옷을 도맡아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다.
반신욕이 수족냉증에 좋다고 해서 시도했지만 숨이 막혀 이내 나왔다.
비싼 입욕제를 선물 받아도 욕조에 한 번 풀지 않았다.
30년 넘도록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피했다.
그래도 사는데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요즘에는 구명조끼, 튜브 등 좋은 제품도 많으니 필요할 때 이런 물건들을 적극 사용하면 되었다.
이랬던 내가 2025년 6월 수영을 시작했다.
시작은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겁이 많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거기에 엄마도 물을 싫어하니 아이도 물놀이의 재미보다 무서움을 더 느꼈다.
우리는 여름이 되면 수영장 있는 펜션, 바다에 갔지만 튜브를 타고 잠깐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니 교육과정에 생존수영이 있었다.
생존수영 날짜가 다가오면서 아이는 극도로 불안감을 느꼈다.
“엄마, 물이 깊으면 어쩌지? 혹시라도 물에 빠지기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아이는 그날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더니 결국 수업에 빠지겠다고 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내 입에서 ‘엄마랑 함께 수영 배워볼래?’ 라는 말이 나왔다.
당황하며 주저하는 아이를 보며 재빨리 덧붙였다.
“그럼 생존수영에 대한 걱정, 두려움이 좀 사라질거야. 남들도 다 배우는데 우리라고 못하겠어? 한 번 해보자. 위급상황이 생겨도 옆에 전문 선생님이 계시니 괜찮을거야. 또 엄마도 옆에 있잖아. 수영장은 바다처럼 깊지 않고 바닥에 발이 닿으니 덜 무서울거야. 엄마도 물 무섭지만 너와 함께라면 용기 낼 수 있어.”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집 앞 수영장에 등록했다.
예상은 했지만 우리의 수영은 처참해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물 밖에서 배우는 발차기, 호흡하는 것 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킥판을 잡고 발차기가 시작되자 이건 뭐, 아이고야!
물에 대한 두려움보다 몸으로 뭔가 배우고 익혀 익숙해지는 과정이 더 어려웠다.
함께 하는 수강생들의 실력은 나날이 좋아지는데 우리는 여전히 뜨지 않는 몸과 사투를 벌였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발차기를 시작하면 다리에 힘이 들어가 몸이 가라앉았다.
코어 근육(우리 몸의 중심부인 척추, 골반, 복부를 지지하는 근육)이 있어야 한다는데
그런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하면 되겠지.’ 싶어 몇 달 동안 발차기에 집중했다.
그사이 함께 시작했던 수강생들은 모두 고급반으로 올라갔다.
우리만 여전히 초급반인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어 괴로웠다.
무엇보다 의기소침해진 아이가 안쓰러웠다.
나라도 좀 잘했다면 좋았을텐데 싶어 부실한 내 코어 근육을 원망했다.
두 달 동안 발차기만 하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키즈전문수영장을 찾았다.
나는 못해도 아이라도 가르쳐보자 싶었다.
그런데 상담을 가보니 성인반도 있다길래 함께 등록했다.
키즈전문수영장이라 한 선생님에 아이 5명이 배정되었다.
아이 맞춤으로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잘못된 자세도 하나하나 다 교정해 준다고 했다.
수업 진행 방법도 마음에 들었지만 걱정말라는 선생님의 자신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난 목요일(정확하게 12월 4일로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아이가 자유형과 배형을 완벽하게 해냈다!
선생님께 받은 영상 속 아이를 보고 울컥 눈물이 났다.
그럼 이쯤에서 나의 수영 실력도 궁금할 것이다.
나는 이제 자유형을 한다.(이 문장을 쓰며 역시 울컥한다.)
물론 아이처럼 자유롭게, 잘 하지 못한다.
여전히 팔 휘젓는 동작은 서툴고, 발차기도 약하다.
중간중간 호흡이 힘들어 멈출 때도 있다.
하지만 킥판 없이 물 위에 내 몸을 띄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매 주 50분 수업이 끝나면 우리의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는 터질 것 같다.
그래도 두려워 피하고만 싶었던 일을 해냈고 잘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이의 어깨는 나날이 상승 중이다.
‘힘들었지만 오늘도 해냈고 내일도 해낼 것이다.’ 라는 생각에 우리의 얼굴은 빛난다.
수영인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꽤 멋지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