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죽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쉬는 휴일이었다. 휴일이지만 놀이동산도 물놀이장도 데려갈 수 없었다. 멀리 가지 못해 미안했던 우리와 달리 아이는 그저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점심은 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사 먹었다. 기분 좋게 들어오던 길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했다. 그래! 여유있는 휴일이니까. 아이를 놀이터에서 좀 놀게 했다. 하지만 5월의 낮은 더웠다. 아이는 이내 목이 마르다고 했다. 집에 가서 물을 챙겨올까 했지만 근처 편의점에 서 물과 함께 간식거리를 사기로 했다. 아이는 남편과 술래잡기, 숨바꼭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나 혼자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물, 나와 남편이 마실 커피까지 계산을 하고 나왔다. 오랜만에 세 식구가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좋아 행복했다. 날씨까지 완벽했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기분 좋게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남편의 품에 안겨 축 쳐져 있는 아이와 울부짖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우리의 행복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나의 시간이 멈췄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4명이 아파트 3층 높이에서 돌을 던져 5살 이 양을 죽였다. 이달 2일 오후 2시경 같은 아파트에 살던 5세 이양은 아빠와 놀이터에서 있었다. 이 양은 숨바꼭질 중 숨기 위해 아파트 1층 화단으로 가다 떨어진 돌에 맞아 사망했다. 이 양의 머리에 떨어진 돌은 크기가 약 25㎝, 하나당 1.5㎏ 정도 나가는 큰 돌이었다. 머리에 돌을 맞고 의식을 잃은 이 양은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경찰 조사 결과 4명의 아이들은 무료하고 심심해 베란다에 앉아 놀이터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분에 깔려 있던 돌을 던지다 그 집에 있던 수석까지 갖고 던지게 되었고 그 돌에 맞아 이 양이 죽게 되었다. 함께 있던 이양의 아버지가 떨어진 돌을 확인하고 위를 쳐다봤을 때 3층에 있던 소년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고 그는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14세 미만의 소년들로 촉법소년에 해당된다. 이들 중 한 아이는 유명한 물리학자의 아들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00일보 기사 중에서-
장례식장에서 생각했다. 아이를 힘껏 안아준 것이 언제였더라.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이 언제였더라. 함께 여행을 간 것이 언제였더라. 아이를 재워준 것이 언제였더라.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언제였더라.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늘 일, 돈이 먼저였지만 정작 그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내 아이는 없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며 좋은 집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한심해 견딜 수 없었다.
나쁜 년.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보면서 지 새끼 하나 지키지 못한 년.
아이가 죽던 순간에도 옆에 있어주지 못한 년.
남은 인생 살 자격도 없는 년.
나를 때리고 또 때렸다. 그때 장례식장 직원이 밖에 가해자 학생과 부모가 기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 잘난 부모들과 변호사들이 생각해 낸 최고의 방법이었으리라. 여길 왔다고?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나는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났다. 남편은 잔뜩 흥분해 그들을 죽이겠다며 날뛰었다. 하지만 이내 나느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돈하고 다듬었다. 거울속에 비친 내 얼굴 위로 아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다시 울컥했지만 이제 울지 않으리라. 용서하지 않으리라. 저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플래시가 터졌다. 눈이 부셨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부모는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 보았다.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너도 많이 힘들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지?”
아이를 살짝 당겨 화해의 의미로 안고 토닥였다. 눈을 질끈 감은 후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죽지 말고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네가 가장 행복한 순간, 내가 널 찾아가 지옥으로 만들어줄게.”
아이의 몸이 움찔 놀랐다.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세게 끌어 안았다. 그리고 아이 등을 한 번 더 토닥였다.
“괜찮아. 괜찮아.”
내 옆에 아이를 세운 후 힘주어 손을 잡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벌벌 떨고 있다. 손을 꼭 잡고 카메라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시 한 번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고 아이가 쓰러졌다. 나는 울먹이며 기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제 아이와 이 아이 모두 편안하도록 이제 그만하세요.”
그 후 남편은 나와 이혼했다. 우리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용서했다며 비난했다. 남편을 비난을 있는 그대로 받았고 원하는대로 이혼해주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아이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내게 그랬듯 가장 행복한 순간, 지옥으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나의 복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