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 이야기

by 모개

“나야. 부탁 좀 하려고 전화했어.”

25년 만에 듣는 목소리.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대학 동기이자 직장 동료였던 내 친구 경희다.

그동안 꼭꼭 숨어있던 경희가 25년 만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도대체 뭘 부탁하려는 걸까?

“우선 만나자. 만나서 부탁이든 뭐든 얘기해.”

“우리 대학 때 많이 가던 커피숍. 아직 있던데. 거기서 이번 주 토요일 1시.”

“좋아.”

바로 전화가 끊겼다.

맞다. 전화번호! 전화번호가 뭐였지?

통화목록을 살펴보니 일반 전화번호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공중전화다.

연락처를 알 수 없는걸까?

그래도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으니 토요일에 나오겠지.


토요일 12시 30분.

미리 커피숍에 도착해 경희를 기다렸다. 오겠지? 안 오면 어쩌지?

1시 5분 즈음 되자 커피숍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경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색하게 손을 들었다.

날 보고 천천히 걸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경희를 보니 여러 감정이 뒤섞였지만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얼마만이니. 잘 지냈어?”

“응. 내가 너한테 부탁할 것이 있어.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경희는 나의 안부에 대답도 없이 부탁이 있다고만 했다.

25년 만에 만났는데 다짜고짜 부탁이라니.

경희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25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긴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얼굴 그대로였다.

그런데 뭐랄까.

자식을 잃은 엄마의 얼굴은 아니랄까.

물론 자식을 잃은 엄마의 얼굴이라는 건 없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경희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났고 얼굴에 생기까지 돌았다.

25년 동안 경희는 어떤 삶을 살았던걸까?

“어려운 부탁은 아니야. 내가 원하는 날, 내가 오라고 하는 장소에 와서 날 도와주면 되는거야.”

“뭘 도와주면 되는데?”

“다음 달 15일 일요일. 그날 00 놀이동산으로 와 줘. 그런데 구급차를 한 대 갖고 와야 해.”

“구급차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근처에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전화하면 바로 놀이동산 안으로 들어와줘. 아마 입구에서 들여보내 줄거야. 그리고 아이 하나를 병원으로 이송해줘.”

“경희야, 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거야? 아이라니.”

“윤희야, 너한테 절대 피해 주지 않을거야. 너 내가 25년 전에 아이 잃은 거 알고 있지? 25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너는 몰라. 절대 모를거야. 물론 그걸 알아달라는 건 아니야. 네가 아직도 내 친구라면, 25년 전 아이를 잃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도와줘. 앞으로 너한테 절대 이런 부탁 안 할거야. 약속할게.”

경희의 눈빛은 간절했지만 단호했다.

25년 전, 장례식장 안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다듬던 그때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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