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절대로 그들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물리학자와 그의 부인은 경희와 얘기를 해보겠다며 직장으로 날 찾아왔다.
나는 그들의 간곡한 표정과 내 앞에 놓인 봉투에 넘어가 장례식장을 알려줬다.
그 후 그들은 기자들을 잔뜩 데리고 장례식장 앞에 나타났다.
그들을 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경희가 기자들 앞에서 그 아이를 용서하는 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그날 경희의 얼굴은 용서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라도 그날 나의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같은 엄마로서 내 친구 경희를 돕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해야 했다.
“할게. 다음 달 15일 일요일. 그날 보자.”
나의 대답에 경희는 말없이 일어나 커피숍을 나갔다.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경희를 돕겠다고 했지만 막상 놀이동산에 도착하니 걱정이 되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어쩌지?
그 아이는 누굴까?
지금이라도 그냥 도망갈까?
나의 마음은 이리 심란한데 놀이동산에 온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행복해보였다.
잔뜩 들뜨고 흥분된 그들에게 주차장 한 켠에 세워진 구급차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어보니 경희가 서 있었다.
경희는 구급차 뒷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우리는 뒤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전화하면 놀이동산 안으로 들어와. 아마 사람들이 네 차에 아이 하나를 태울거야. 그럼 바로 아이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고. 이걸 정맥에 주사해. 이건 아질산아민이야.”
“뭐라고? 너 설마.”
“윤희야, 걱정하지마. 내가 설마 아이를 해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내가? 그냥 과거의 일을 바로잡기 위해 하는 일이야. 몇 번이고 확인하고 계산한거야. 그러니 제발 날 도와줘.”
“알겠어. 할게. 그런데 아질산아민만으로는 위험해.”
“알아. 그래서 내가 먼저 사이오황산나트륨을 써서 시간을 벌거야. 그러니 네가 빨리 와줘야 해. 조금이라도 늦음 위험해.”
“알겠어.”
그리고 경희는 놀이동산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자 경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놀이동산 입구로 차를 몰았다.
놀이동산에서는 구급차를 보더니 별 의심없이 패스트푸드점으로 안내해줬다.
나는 어떤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빠르게 아이를 구급차에 태워 눕힌 후 산소호흡기를 채우고 아질산아민을 주사했다.
그리고 아이는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
해독제는 효과가 있었을까?
불안한 마음에 텔레비전을 켰다.
놀이동산에서 한 여자가 아이를 살해했다는 뉴스 속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아이가 죽었다고?
절대 아이를 해치지 않을거라면서!
그렇다면 나는 살인공모자가 되는건데 어쩌지?
약속을 어긴 경희에 대한 분노, 내가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 감옥에 간다는 공포,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거실을 서성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저녁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또 그 다음날이 되어도 경찰은커녕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았다.
며칠 후 뉴스를 통해 경희가 구치소에서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희가 죽었다고?
급히 경찰서로 가려다가 경찰들이 날 알아볼까봐 무서워졌다.
결국 나는 경희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지 못했다.
나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먼저인 이기적인 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