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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8. 2023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인 여성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의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읽고 

#우리가명함이없지일을안했냐

#경향신문젠더기획팀 #플랫



2022년 1월,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은 1950년대 태어난 여성들을 조명하는 기사를 연재했다. 이들은 기획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평생 일해 온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다. 언제나 N잡러였지만 ‘집사람’이라 불린 여성들, 이름보다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려온 여성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일의 기쁨을 느끼며 ‘진짜 가장은 나’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여성들, 남존여비 시대에 태어나 페미니즘 시대를 지켜보고 있는 여성들.'(p.5)



젠더기획팀이 만난 여성들은 한 번도 손에서 일을 놓은 적이 없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동생들을 위해 가사 노동을 했고,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었다. 고등교육을 받고 취직을 했다고 해도 결혼을 하고 나면 당연히 전업주부가 되었다. 퇴근 후 가사와 육아, 양가의 건강과 살림을 챙기는 온갖 감정 노동까지. 그리고 할머니가 된 후에는 손주 돌봄 노동도 이어진다. 말 그래도 N잡러로 평생을 살아왔다. 



1950년대 여성들의 딸들도 여전히 그러하지만, 1950년대 여성들은 '평생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p.270) 불렸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은 인터뷰가 시작되는 맨 첫 장에 인터뷰이들의 명함을 만들어 넣었다. 한식당 오너셰프, 여성복 디자이너, 육아전문가, 맏며느리, 총무, 부녀회장, 가사노동자, 요양보호사 등 이들의 명함에는 기본적으로 세 개 이상의 직함이 들어간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인터뷰집 속 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여성 노동을 숭고한 희생으로만 포장할 수 없음을 느낀다. 이들의 노동은 '현실에 있는 일이자 나의 일'(p.207)이다. 모성애에서 우러나온 일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노동자의 관점에서 우리네 엄마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이제 '딸들의 시선은 자신을 포함해 여성들의 노동을 재평가하는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었다.'(p.199)



인터뷰이 중 한 사람인 장희자 님은 이렇게 말한다. 


"늘 내 인생은 뭐였을까 생각하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밖에 없지 않나 생각했는데요.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되네요. 지금까지 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내가 해 온 일에 대해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 '집사람' 친구들, 우리 멋있어요. 우리 모두 수고했어요."(p.74)



300쪽 남짓 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 시대 여성들이 굳건하게 살아낸 날들이 내 마음속으로 흘러 들어온 것이 느껴졌다.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드니까 너무 힘들었지만 도망가지 않았'(p.30)다는 손정애 님의 말에 단단한 용기를 얻는다. 이 멋진 여성들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p.269)이다.



#페미니즘 #인터뷰집 #북스타그램 #텀블벅펀딩 #서평 #대체텍스트 #여성의노동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주름진 흰 천 위에 책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놓여 있다. 책 오른쪽에는 솔방울이 두 개 있다. 책 표지는 진한 파란색이고, 고무장갑을 끼고 턱에 흰색 마스크를 걸친 60대 여성이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성은 안경을 썼고 꽃무늬 조끼, 까만 바지, 운동화를 신고 자신만만한 얼굴로 정면을 보고 있다. 여성의 뒤로 책 제목인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가 노란색으로 크게 쓰여 있다. 책 제목 위에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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