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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9. 2023

'그냥 엄마'임이 수식어에 가리지 않기를

윤소연의 《그냥 엄마》를 읽고

#그냥엄마 #윤소연



《그냥 엄마》는 비장애 아이들을 키우는 시각장애인 엄마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장애인 엄마들이 어떻게 일상을 살아갈지 아이를 돌볼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문득 며칠 전에 자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아이들이 눈이 부실까 싶어 불을 켜지 않았다. 그런데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도, 화장실을 쓰는데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익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물건이 어디쯤에 있는지, 만졌을 때 어떤 물건인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불을 켜지 않고도 화장실에 다녀오는 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처럼, 익숙한 공간에서는 장애가 있든 없든 서로의 일상이 크게 차이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시각 없이 살아갈 때의 불편한 점을 차이가 조금 있다는 정도로 눙칠 수는 없다. 아이의 입이 보이지 않아 이유식을 먹일 때 어렵기도 하고, 아이가 바닥에 어지른 장난감을 보지 못해 밟고 다치기도 한다.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면 손을 잡지 않고는 아이의 위치를 소리로만 파악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엄마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불편함을 더한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 여성은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장애가 자녀에게 악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p.303) 심지어 '장애 여성이 아이를 낳는 행위를 무책임하다고 여기기까지 한다.'(같은 쪽) 그런데 이러한 시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만약 대다수가 시각 장애가 있다면, 지금처럼 판단의 기준이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은선은 어린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은선은 주체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엄마로 보인 것이다. 은선은 엄마가 되었을 대 느낀 동등함에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엄마라는 이름은 은선의 삶에 '주체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주었다. 동시에 남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상이 은선에게는 육아라는 검증 과정을 거쳐야지만 비로소 인정된다는 사실이 약간은 불편했다.'(p.34~35)



누군가는 장애인을 동정하고 혼자서는 일상을 잘 살아내지 못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장애인은 어린아이나 안내견을 데리고 외출하면, '도와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덜 받는다고 한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명을 돌볼 수 있음을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비로소 온전한 개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과 비장애를 기준으로 설계된 기반 시설은 장애인에게 이동과 교육 등의 수많은 자유를 제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는 차이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결핍이 된다. 이 책의 인터뷰이 엄마들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거나 양해를 구하지'(p.254) 않는다. 실수하면 사과하고 틀리고 잘못될 수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엄마가 갖는 특성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좋은 양육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양육의 과정과 무수히 많은 경험 속에서 저마다 고유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것이다.'(p.308) 나도 첫째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다. 조금도 여유롭지 않았고, 매 순간 시행착오와 실수를 거듭했다. 아이들과 나는 서로의 기질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함께 적응해나갔다. 조급해하면서 한 번에 정답을 찾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엄마가 되는 데 필요한 과정을 전부 연습해 본다는 것은 불가능'(p.37) 하다. 장애가 있든 없든 엄마들은 찬찬히 아이가 커나가는 과정을 밟아나갈 수밖에 없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엄마들은 대부분 아이를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내가 그랬듯 아이에게 이 정도까지만 해줄 수 있다고 포기하는 순간도 많이 겪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 엄마들처럼, 나도 아이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잘 살아야겠다고 곱씹는다. 키우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든 애한테는 자기 엄마가 최고'(p.68)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보이지 않는 엄마와 보이는 아이가 전하는 가장 선명한 사랑의 흔적'을 더듬으며, '시각장애'가 인터뷰이들을 설명하는 많은 수식어 중 하나임을 느낀다. 그리고 나에게 붙어 있는 수식어들을 바라보다가, 우리 엄마들이 '그냥 엄마'라는 사실이 수식어에 덧씌워지지 않기를, 그래서 각자의 고유한 빛이 가리지 않기를 마음 깊이 소망했다. 




#시공사 #장애 #시각장애 #비장애아이 #육아 #육아인터뷰 #인터뷰집 #북스타그램 #서평 #대체텍스트



* 네이버카페 '엄마의 꿈방' 장애인식개선스터디 장똑대 과제로 쓴 글입니다 *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회색 천 위에 책이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여 있다. 책 왼쪽에는 하얀 꽃송이가 세 개 군데군데 놓여 있다. 책 표지는 연한 살구색이고, 책 표지 상단에 제목 '그냥 엄마'가 있다. '그냥'과 '엄마' 사이에는 살짝 겹쳐진 동그라미 두 개가 그려져 있다. 제목 아래 책 제목이 점자로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의 여러 가지 꽃이 핀 꽃밭 위에 엄마와 아이가 서로에게 내민 손을 그린 그림이 있다. 엄마와 아이의 손은 서로 손바닥이 겹쳐져 있고, 두 개의 손은 양각 처리되어 있다. 꽃밭 좌측 하단 구석에 '시공사'가 있고, 그 아래 까맣고 얇은 줄이 하나 그어져 있다. 줄 아래 '보이지 않는 엄마와 보이는 아이가 전하는 가장 선명한 사랑의 흔적'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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