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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9. 2023

도치님과 반다님께 보내는 편지

김도치·서반다의 《언니의 (비밀계정)》을 읽고 

#읽는페미 #언니의비밀계정

#김도치 #서반다



도치 님과 반다 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나비라고 합니다. 페미니즘 웹진 아주마스의 필진이자 발행인을 맡고 있어요. 인스타를 넘어 책으로도 뵙게 되어 정말 기뻐요. 오랫동안 '읽는페미' 계정(@reading.femi)에서 귀한 페미니즘 책들을 많이 소개받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피드에서 만날 때면 반가움에 하트를 열 번씩 누르고 싶었고요. '읽는페미' 게시물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걸 보면 저도 힘이 솟아요. 계정의 팔로워가 2.7만 명이 넘는 것도 너무나 멋지고요! 



유명한 만큼 악플도 엄청 달리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저도 악플을 겪은 적이 있어요. 예전에 어떤 만화의 방영 중지 서명 링크를 단톡방에 공유했어요. 그 만화에는 불법 촬영을 하고 그걸 빌미로 협박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거든요. 그런데 단톡방에 있던 어떤 사람이 대뜸 '불편충' '프로불편러'라고 쏘아붙이더라고요. 순간 손이 떨렸어요. 그래도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혐오하거나 차별하는 내용으로 예능이나 게임 콘텐츠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명은 원하는 사람만 하면 된다.'라고 썼어요. 도치님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악플을 마주하고 지워오셨을까요. 우리가 하는 말과 전혀 관계없이, 그저 '페미'라고 하면 달려들어 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 책을 읽으며, 잠에서 덜 깨어 정신이 몽롱할 때 열심히 악플을 지우는 도치님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어요. 맥락 없는 혐오에 맞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셨을 것이 상상되어,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아팠어요. 그래도 '어쩌면 이 비밀계정은 나의 용기보단 너와 닮은 여러 사람들의 마음 덕분에 이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p.40)라고 적어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와 제 주변의 여러 페미니스트들이 언제나 '읽는페미' 계정을 응원하고 있다는 걸 꼭 잊지 말아 주세요.



도치 님과 반다 님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며, 저와 웹진을 함께 발행하는 친구들이 떠올랐어요. 저희는 세 명인데 셋 다 다르거든요. 아들이 있고 워킹맘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는 지역도, 일하는 분야도, 관심 있는 책 종류도 모두 달라요. 웹진에서도 각각 에세이, 소설, 서평이라는 분야를 나눠 맡고 있고요. 처음 웹진을 시작했을 때는 자잘한 의견 차이로 상대방이 이해가 가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안전한 관계라는 걸 믿고, 도치 님과 반다 님처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다름에 익숙해져 갔지요. 책에 적어주신 것처럼,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진 기분이었어요.



목주름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저도 모르게 방긋 웃었어요. 불상처럼 목주름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로서는, 도치 님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아요. 이십 대 초반 한참 화장을 열심히 하던 시절에는 자기 전에 넥 크림을 꼭 발랐어요.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의 매끈한 목선을 선망하면서요. 페미니즘을 알기 전에 저는 동안·가는 팔다리·작은 발·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어요. '이 수많은 '다행'은 누구를 밟고 서 있는 걸까.'(p.93)라는 말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어요. 틀에 맞출 수 있어 다행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이 틀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건 아닌지, 과연 이 틀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고민해 봐야겠지요. 



저에게도 흑역사가 많아요. '뚱뚱한 사람은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런 거다', '애교를 적당히 부릴 줄 알아야 연애가 편하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 되는 거다'라고 생각했던 옛날의 저를 떠올리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래도 실수했던 걸 흑역사로만 묻어두고 싶지 않아요. '모르면 물어보고, 배우고, 상대의 의견에 귀 기울여 들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더 나아갈 수 있을'(p.136) 거라고 믿어요. 여전히 실수하고 미끄러지는 저에게 이 책의 구절이 힘을 불어넣어 주네요.



도치 님, 반다 님, 책을 써주어서 고마워요. 별것도 아닌 일에 네가 예민한 거라며, 페미니즘을 비하하고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책을 떠올려 볼게요. '페미니즘이란 세상을 보는 하나의 안경이자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p.171) 임을 기억하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래요. 페미니즘으로 뭉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걸,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잊지 않을게요.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가벼운 바람 한 번에 몸집을 키워 화력을 불태울 수 있다는걸요.'(p.168)



우리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반갑게 만나요! 



2022.08.04.

나비 드림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 제공받았습니다.



#이봄출판사 #페미니즘 #편지 #서평 #북스타그램 #대체텍스트


주름진 흰 천 위에 책이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다. 책 우측 상단에 파란 꽃이 여섯 송이 정도 붙은 꽃다발이 거꾸로 놓여 있다. 책 표지는 분홍색이고, 긴 머리와 단발머리 여성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 추상적인 도형으로 그려져 있다. 책 표지 상단에는 '언니의――(비밀계정)', 책 표지 중앙 좌측에 '주눅 든 나를 일으켜줄 오늘의 편지', 책 표지 중앙 우측에 저자명 '김도치 x 서반다'가 쓰여 있다. 책 표지 중앙 하단에는 이봄 출판사의 로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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