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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9. 2023

작은 다정함에 대하여

정세랑의 《재인, 재욱, 재훈》을 읽고

#재인재욱재훈 #정세랑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당시 나는 번아웃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일은 몰아쳤고, 상사는 나를 달달 볶았고, 장기 프로젝트를 같이 하던 직원들이 스케줄 상의 없이 휴가를 갔다. 덕분에 나는 일이 몇 배로 늘어났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았다. 툭 치면 눈물이 투닥투닥 떨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순간들. 주어진 일을 하고는 있었지만, 아무 일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수많은 고비를 넘기던 어느 날, 다른 회사에 다니던 친구와 시간이 맞아 같이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다가 친구가 가볍게 물어본 근황에, 나는 진지하게 몰입해버렸다. 힘든 이유를 하나 둘 털어놓다가 잠시 내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친구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들었다. 계산하려고 일어났을 때 나에게 다가와 나를 잠시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많이 힘들지. 네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 나도 너무 속상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내가 옆에 있을게." 



《재인, 재욱, 재훈》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생긴 초능력은 엄청나지 않다. 마블 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들처럼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울 만한 힘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재인, 재욱, 재훈은 각자 받은 초능력을 이용해 총 여섯 명을 구한다. 나는 이들의 초능력이 세상을 뒤집을만한 힘이 아니고, 6만 명이 아닌 6명을 구해서 더 좋았다. 자기가 가진 아주 작은 능력으로도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친구가 토닥거려주었을 때, 나는 나를 귀하게 생각해 주는 따듯한 마음을 받았다. 친구의 상냥한 목소리가 내 마음에 스며들어와, 한없이 가라앉던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덕분에 나는 완전히 밑바닥으로 침잠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친구의 품에서 전해져 오던 온기를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탕처럼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 다정함 들은 여전히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은행나무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대체텍스트


(대체 텍스트, 사진 설명) 회색 천 위에 책이 놓여 있다. 책 왼쪽에 파란색 꽃 네 송이가 있다. 사진 오른쪽에서 햇빛이 비치고, 책 표지에 얇은 세로 창살 무늬로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책 표지는 흰색이고, 표지 상단 중앙에 작은 글자로 '은행나무 노벨라 05'가 있다. 표지 중앙에 크고 반짝이는 파란 글자로 '재인, 재욱, 재훈'이 쓰여 있다. '재인' 오른쪽에는 복숭앗빛 초승달 모양 손톱 조각, '재욱' 왼쪽에는 손톱깎이, '재훈' 오른쪽에는 열쇠가 그려져 있다. '재훈' 아래에는 '정세랑 소설'이 쓰여 있고, 레이저 포인터 그림이 있다. 책 표지 중앙 하단에는 출판사 로고인 은행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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