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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Sep 07. 2023

그가 우리 층으로 왔다

- 불쾌한 기억은 어째서 대물림 되고 있는지

내 눈을 의심했다. 그 사람이 우리 층으로 온다고? 어제 확인했을 때는 지사로 가는 줄 알았는데. 회사 포털에 들어가서 이동 발령 공지를 다시 클릭했다. 이럴 수가. 내가 착각했다. 우리 층으로 온다고 믿고 싶지 않아 나도 모르게 잘못 봤던 건가. 몸이 살짝 굳어졌다. 긴장해서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다시 한번, 이럴 수가. 십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괜찮지 않다니.



불쾌한 기억의 시작


슬슬 바람에 온기가 섞이던 2013년의 초봄이었다. 첫 직장을 3년 반 다니고 이직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식이 잡혔다. 나의 입사를 축하한다고 부서 직원 삼십 명이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다. 1차로 갔던 삼겹살집에서 사람들이 번갈아 나에게 술을 권했다. 물컵에, 물수건에, 바닥에 소맥을 열심히 버렸지만 권하는 사람 수가 워낙 많았다. 꽤 취한 상태로 2차 노래방에 갔다. 캔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불렀고 다들 거나하게 취해서 정신이 없어 보였다. 열 시가 넘어 2차가 끝났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도 집으로 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이 주임, 맥주 한 잔 더 할래?” 옆 팀 남자 차장이었다. 한 달 정도 오며 가며 인사하다 몇 번 말을 해보았던 사이였다.


그가 단순히 후배 직원을 챙겨주고 싶은 거로 생각했다. 유부남이라 오히려 그를 경계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 전이었고 만나던 애인이 있었다. 주변 지리에 익숙지 않아 그가 가자는 대로 근처의 커다란 호프집으로 향했다. 500cc 맥주를 한 잔씩 비웠다. 한 잔 더 마시겠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며 일어났다. 순간 너무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가 일어나서 넘어지지 않게 내 팔을 잡았다, 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는 나를 껴안고 입을 맞추려고 했다. 너무 놀라서 그를 밀어내고 호프집을 뛰쳐나왔다. 속은 쉴 새 없이 메슥거리고, 머리는 빙글빙글 돌면서, 몹시 혼란스럽고, 아주 지저분한 벌레가 몸에 닿은 것 같이 기분이 나빴다.


다음 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출근했는데 사무실에서 그와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는 잘 들어갔냐며 태연하게 나에게 인사했다. 그의 멀쩡한 태도를 보고 나는 내 기억을 의심했다. ‘내가 혹시 많이 취해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과 불쾌함은 분명히 내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만약 그가 나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내 기억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고 묻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부서 회식 며칠 뒤에 나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의 메일을 열어보고 소름이 끼쳤다. 둘이 먹자고,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 좋다고 메일에 쓰여 있었다.


역시 내 기억이 맞았던 거다. 내가 선약이 있다고 답해도 그는 자꾸 다른 날짜를 제안했다. 여러 핑계를 대며 모두 거절했다. 계속 거절이 반복되자 그도 회사에서 자기 평판을 신경 썼던 탓인지 더 밥을 사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더 접근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종종 괴로웠다. 같은 부서에서 그나마 가까워졌던 직원 두 명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절대 다시 만나지 말라면서도, 다른 해결책은 알려주지 못해 곤란해했다. 내가 술을 더 마시겠다 했으니 어떤 사람들은 내 탓을 할 수도 있다고, 회사 들어오자마자 입에 오르내리면 좋지 않다고도 했다. 성추행당한 사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 engin akyurt, 출처 Unsplash


페미니즘의 도움을 받아


그때 일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술 마시러 갔던 나를 책망했다. 더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혼자 묻어둔 채 지금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몇 년 전에야 나는 페미니즘 공부 덕분에 과거의 나를 보듬어 줄 수 있었다. 특히 ‘동의’ 개념이 자책하지 않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나는 술을 마시겠다는 것에 동의했을 뿐이지, 내 몸의 경계를 침범하는 데 동의한 적은 없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다면 동의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신입이어서 성추행하기 만만한 상대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여자 신입 직원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 일을 공론화하지 못했다. 

페미니즘 책을 읽고 나이가 다양한 지인들과 성추행 피해 경험담을 나누었다. 2019년, 여러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여자 후배들의 몸매와 얼굴을 평가하며 등급을 매긴다는 뉴스가 나왔다. 30대인 나는 퇴근길 지하철에 서 있었는데, 누군가 뒤로 지나가며 내 엉덩이를 만진 적이 있었다. 40대 지인 회사에서는 팀장이 업무 지시를 하는 것처럼 다가와 그녀의 허리와 등을 만졌다. 50대 지인 회사 회식 자리에서는 부장이 테이블 아래로 그녀의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나 뿐 아니라 지인들의 주위, 그러니까 여기저기에서 성추행이 흔하게 벌어졌다. 여성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성추행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성추행은 끊임없이 집요하게 대물림되고 있었다.


페미니즘 공부 덕분에 나는 내가 그때 겪었던 일에 완전히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2013년 이후로 그와 같은 부서가 되거나 같은 층에서 근무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십 년 만에 같은 층에 있는 옆 부서에 그가 발령받아 오게 된 것이다. 그를 같은 층에서 보자마자 나는 불안해졌다. 그와 실루엣이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믿을 만한 회사 사람에게 내 상태를 털어놓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내가 숨을 제대로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십 년 전 부서 사람들이 보였던 소극적인 태도가 떠올랐다. 순간 멈칫했지만, 지금은 2013년이 아니었다. 그사이 수많은 미투 운동이 세상을 바꾸어왔다. 우리 회사에서도 최근 5년 사이에 성추행으로 징계를 받은 직원들이 두 명 있었다.


© Tine Ivanič, 출처 Unsplash



대물림을 끊어내는 노력을


최근 가까워진 회사 직원 A에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나와 성향이 잘 맞아 왠지 그녀라면 이해해 줄 것 같았다. A는 내 이야기를 듣고 불을 뿜을 것 같은 용처럼 분노했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A가 신입 때 담당 팀장이 그녀를 성추행했다. 가해가 계속되자 그녀는 노조로 달려갔고 곧바로 공론화 되어 그 팀장은 지사로 쫓겨났다. 오?! 회사에서 징계받은 가해자가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누가 피해를 받았는지는 몰랐는데 바로 A였던 것이다. A는 지금이라도 노조에 이야기해보겠냐고 했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었다. 그 차장이 발뺌하면 내가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A가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어 마음이 든든해졌다. 부끄러워야 할 것은 그 차장이지, 내가 아니다.


나는 대신 마주쳐도 그 차장에게 인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정색한 채 빳빳하게 고개 들고 지나치기로 했다. 사람 실루엣만 보여도 목례하기가 10년간 회사 다니며 몸에 밴 습관이라 나도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우리 회사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회사안에서는 서로 가볍게 인사한다) ‘여기는 내 나와바리다!’라고도 여러 번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지금 부서에 전입한 지 6개월이 넘었고, 우리 팀장과 팀원들, 같은 층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원만하게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며칠 후, 실제로 그와 마주쳤을 때, 나는 인사 안 하기에 성공했다! 그 순간 그는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고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차갑게 표정을 굳히고 입을 꾹 다문 상태로 발걸음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지나갔다. 


소소한 승리에 기뻐하다 두 번째로 그와 마주쳤다. 점심시간이 되어 내 자리에서 사무실 복도로 나와 엘리베이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앞에서 걸어가다가 유리문에 비친 나를 보더니, 비상구로 나갔다. 나와 그 사이에서 걸어가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나를 피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또한 성공 경험으로 치기로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를 대놓고 무시하리라 다짐했다. 누군가 이상하게 여기고 이유를 물으면 움츠리지 않고 찬찬히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가 술에 취한 나를 성추행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저녁’만 먹자고 했다고. 그런 사람한테 예의 갖춰 인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성추행의 대물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 ‘성추행’이라고 검색해본다. 매일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있고, 당장 몇 시간 전에도 기사가 올라와 있다. ‘여교사 어깨 주무르고 성추행한 공무원 강등’ ‘OOO, 여직원 강제 추행 혐의로 불구속 송치’….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나는 퀴퀴하고 탁한 대물림의 물결을 끊어내려고 미투 운동에 앞장섰던 용감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피해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고, 가해자에게 절차에 따른 처분을 받게 한 A도 기억한다.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더라도 돌을 하나씩 놓아 징검다리를 만들면, 언젠가 지긋지긋한 대물림의 강을 건널 수 있다. 내가 놓은 작은 돌도 그 징검다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Artem Kovalev,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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