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민 Jul 05. 2024

<커피 한잔 할까요?>, 허영만

맨 처음 마신 커피 그 후로 성장하다.

몇 년 전 한 일간지에서 허영만의 만화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글도 좋고 그림도 좋아 일주일에 한 회씩 감질나게 읽다가
단행본이 나오자마자 바로 구입해 소장했다.
 
 아침 눈으로 커피를 읽다 보면
신기하게 커피 향이 코 안으로 스며들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그 종류와 역사와 배경에 대해선 무지.
르완다든 케냐 커피든 각각의 에피소드로 엮인
만화는 만화일 뿐이고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지만 이상하게 신문의 그 코너를 펼치면 실제처럼 커피 향이 전해지곤 했다.

커피가 일상이 된 지는 오래다.
늘 가까이 있어 귀한 줄 모르는 물질 중 하나가 되어 버린 커피.
그러나 귀한 사람 만날 때 역시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 커피이기에 나는 글로 읽는,

또는 눈으로 보는 만화 속 커피에서 그 진한 향을 느껴냈는지 모르겠다.

내게도 나만의 커피 스토리가 있다
언제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그날은 친구가 나를 그녀의 방으로 초대한 날이었으니까.
집이 아니라 그녀 최초의 방이었다.
"문간방에 세 든 사람 내보내고 그 방을 내가 쓰게 됐어.
나 혼자 쓰는 내 방에 너를 제일 먼저 초대하는 거야"

우린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학교와 집을 맴돌던 중학교 시절과 달리
동네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아지던 시기다.
바로 그즈음 커피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사실 최초로 맛본 커피는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가 남대문 수입상가 도깨비 시장에서 곧 잘 사 오던 유리병에 들어 있는 맥스웰 커피.
그러나 초등학교 무렵엔 쓰기만 한 커피 따위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감히 그걸 덜어 내 끓여 마실 의지 같은 게 내겐 없었다.
아버지가 드실 때 조그만 티 스푼으로 한 번 찍어 먹어 볼까 말까 한 정도였다.

여고생이 돼 친구에게 독방이 생기고 그 공간만큼의 자유가 우리에게 왔다.
왠지 빈 손으로 친구의 방을 찾는 건 예의가 아니란 기특한 생각이 들어
나는 새우깡과 에이스 크래커를 샀다.

마포 주택가 한옥 대문을 열고 중문 미닫이를 옆으로 밀면 왼쪽으로 그녀의 방이 있었다.
마루를 사이에 둔 안방과 건넛방까지 갈 것 없이 우리만의 공간에 바로 숨어들게 되었다.
작은 방안 보자기인지 스카프인지 모를 헝겊 두른 조그만 협탁이 있다는 게 새로웠다.
고등학생 주제에 커피와 프림과 설탕통과 찻잔을 갖추고 있다니 문화적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세 살 위 언니의 영향이었다.
아무려나 그날 우린 아니 나는, 그녀가 조제해 주는 생애 첫 커피를 마시게 된다.
원 투 쓰리라고 했다.
커피 한 술 프림 두 술 설탕 세 술.
거기에 에이스 크래커와의 조합까지 세상 달달한 맛,
딱 그 시간 그 공간 우리들만의 맛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다.
원투쓰리 조제법은 대학 들어가 커피숍을 전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지금에야 세련된 카페지 그 당시 커피숍에선 종업원이 차 주문을 받았고,
테이블마다 프림과 설탕통이 놓여 있곤 했다.

아저씨들이나 드나들었을 한복 입은 마담이 상주한 다방에도 가봤다.
별명이 미스 부산이던 같은 과 친구가 데려간 곳이다.
"우리 엄마가 하는 다방이야." 라면서.
나는 한복 입고 손님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이 친구 엄마라는 사실에 놀랐고,
엄마가 저렇게 젊고 예쁠 수 있는가에 놀랐으며,
무엇보다 나를 그곳에 데려간 친구에게 가장 많이 놀랐다.
별명만 미스 부산이 말했다. "ey 네가 처음이야. 우리 집에 친구를 데려온 건."

그때부터였던가? 아니면 단순히 폼 잡는 유행이었나?
내가 원투쓰리를 끊고 소위 블랙으로 갈아타게 된 시점이.
커피가 세상 달달한 맛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무심히 각기 다른 커피 맛을 가르쳐준 그녀들.
기꺼이 자신의 아지트에 제일 먼저 나를 초대해 준 그녀들.
각자 웃었고 각자 아프던 시절.
그 앞엔 늘 커피가 놓여 있었다.
나의 성장통의 다른 이름은 아마도 커피다.

작가의 이전글 <화장>, 김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