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캐나다 출신 앨리스 먼로는 부커상 수상작가이며 단편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소설은 tv 드라마로 각색되기도 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각각의 삶을 꾸려가는 이웃집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가 안내하듯 자신이 나고 자란 시골 마을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이 책에는 표제작 포함해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렸다. 거짓말이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그래서 어떤 운명으로 귀결되는가 혹은 사춘기 소녀의 한낱 장난으로 시작된 편지가 예측 불허 가족 탄생 비화가 되는 등 주변 이야기는 각각의 일상이다. 그러니 밖에선 평이하고 엇비슷해 보일지 모르나 안으로 들어가 숨은 구석을 살펴보았을 때 누구나의 말 못 할 아픔이 있다.
마지막 수록 작품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영화 <어웨이 프롬 허>의 원작이다. 우아한 치매 할머니 피오나가 어떤 모습일지 난 그저 책으로 상상할 뿐 영화를 찾아보지는 아직 않을 예정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나 나로선 반전이고 의외다. 피오나와 그랜트는 각각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라 같은 대학에서 만났다. 부유하고 진보적이면서 사교성 있는 피오나가 공부밖에 출세길이 없(어 보이) 던 그랜트에게 먼저 청혼한다. 부부가 되어 40년 넘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중 피오나에게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 워낙 메모 광인 피오나지만 좀 더 구체적인 혹은 불필요한 메모를 곳곳에 붙여 놓는다. 급기야 외출하고 집으로 오는 길을 잃더니 그녀 스스로 요양원행을 결정한다. 그즈음 동네 사람이 하나 둘 들어가기 시작해 남편과 병문안을 가기도 했던 곳이다. 한 달간 가족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 입소 규칙은 적응 기간이 필요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해 환자도 가족도 다 힘들어져 결국 번거로운 과정을 새로 시작하게 된다. 긴 한 달을 보낸 후 아내에게 간 그랜트는 뜻밖의 모습을 본다 적응을 잘하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오브리라는 남자에 집중해 있다. 카드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등 피오나는 다른 사람 같다. 심지어 남편 그랜트를 귀찮은 방문객쯤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오브리는 이곳 상주 환자가 아니다. 그의 아내 메어리언이 여행 가면서 잠깐 맡겨 놓은 상황이고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여행을 마친 메어리언이 오브리를 퇴원시키자 그날로 피오나는 앓아눕는다.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아 점점 쇠약해지면 중증 환자만 모아놓은 이층으로 가야 한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피오나를 호전시키기 위해 그랜트는 큰 결심을 하는데 오브리의 집을 찾아가 그를 다시 요양원으로 데려 오려고 한다. 그러나 오브리의 아내는 요양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거절하면서도 일말의 여운을 남긴다. 젊어서 바람기가 있던 그랜트의 눈에 오브리의 아내 메어리언이 들어온다. 아내보다 미모는 아니지만 강건한 생활력과 활동성에 매력을 느낀다. 메어리언 역시 그랜트에게 댄스 파트너를 요청하는 등 그를 떠보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열린 결말이다. 피오나에게 오브리를 데려다주고 그랜트와 메어리언은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하는 등. 나는 그랜트의 진심을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피오나, 놀라지 마. 내가 누구와 왔는지 알아? 오브리 기억나지?" "당신이 와서 기뻐요."라고 대답하는 마지막 장면이 헷갈린다. 그랜트여서 기쁜 건지 남자친구 오브리가 와서 그런 건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 사이라도 비밀은 존재하며 결국은 타인 때론 소통의 부재 그로 인한 상처, 기억과 현실 속 노후를 그린 인상적 단편이다. 영화도 볼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