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판단자가 아니라 행위자다.
비트코인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비트코인이 진짜 화폐인지, 투기 수단인지, 사기인지 묻는다. 하지만 이 질문은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 마치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선수에게 "지금 MVP냐?"고 묻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 비트코인은 운동장 위에서 뛰고 있는 플레이어다. 아직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점수를 매길 때가 아니다. 우리는 그 경기를 관전하는 심판도 아니고, 중계진도 아니다. 우리 역시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다.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려 하지 말고, 그것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존재의 본질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이 관점은 여러 철학 사조에서 강하게 주장되어 왔다.
먼저,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 20세기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이렇게 말했다. "사물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 철학에서 세상의 기본 단위는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건'이다. 비트코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기술, 규제, 시장, 사용자, 투자자, 채굴자와 끊임없이 얽히며 의미를 생성해 나가는 살아 있는 사건의 연속이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도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 이론은 프랑스의 철학자 브루노 라투르가 만든 것으로, 세상의 모든 구성원은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동등한 '행위자'로 본다. 기술, 법, 기업, 인간 모두가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의 일부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은 코드가 아니다. 그것은 채굴자, 거래소, 정부, 투자자, 언론, 알고리즘 등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다. 이 상호작용의 역동성 속에서 비트코인은 그 의미와 정체성을 획득한다.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역시 비트코인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사회구성주의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 합의와 인식의 결과물이라고 본다. '화폐'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금, 은, 지폐, 신용카드, 지금은 암호화폐까지. 무엇이 화폐인가는 그 자체로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비트코인이 화폐인지 아닌지는 누가 명령하거나 법으로 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완성된 무언가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장, 규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계속해서 '되어가는 중'이다. 놀라운 건, 이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우리는 이렇게 화폐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화폐는 항상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경우, 화폐는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중세 영국에서는 민간 장인과 상인들이 직접 은을 녹여 동전을 만들었다. 당시엔 왕의 인장보다 동전의 무게와 순도, 그리고 그것을 만든 장인의 신뢰도가 더 중요했다. 시장은 스스로 신뢰할 수 있는 화폐를 골라냈고, 품질이 나쁜 동전은 거부당했다. 이건 엄연한 시장 선택의 결과였다.
17~18세기 미국 버지니아 식민지에선 담배가 화폐였다. 농민들은 담배로 임금을 받고, 세금을 내고, 벌금을 냈다. 정부가 명령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화폐처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실제 화폐가 되어갔다. '담배 화폐(Tobacco Money)'는 자생적인 민간 화폐 실험의 대표 사례다.
19세기 미국엔 '프리 뱅킹 시대(Free Banking Era)'가 있었다. 이 시기엔 수백 개의 민간 은행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했다. 정부의 중앙 통제 없이 말이다. 어떤 은행의 지폐가 시장에서 잘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뢰와 금속 준비금, 그리고 사람들의 선택 때문이었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지만, 이 시대는 화폐가 시장의 힘으로도 운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수많은 공동체에서 조개껍데기, 소금, 철 등의 실물 화폐가 자발적으로 사용되었다. 희소성과 운반성, 그리고 공동체의 신뢰가 결합할 때, 그것은 화폐가 되었다.
이 모든 역사적 사례가 말해주는 바는 분명하다. 화폐는 누가 찍었다고 해서 화폐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화폐가 된다.
오늘날의 비트코인도 다르지 않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보관하고, 전송하고, 거래하고 있다. 가격은 오르내리고, 규제는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비트코인은 하나의 사회적 실험이자 경제적 현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비트코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흥미롭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고, 역사의 또 다른 반복일 수도 있다. 이 실험의 결과가 무엇이 될지 지금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안다. 과거에도 수많은 화폐들이 그렇게 '되어왔듯', 오늘 비트코인도 누군가의 선택 속에서 무엇인가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