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명칭과 주요내용.
미국 의회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이하 ‘연준’)의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CBDC) 발행을 강력히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입법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왔는데, 대표적인 법안은 〈No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Act〉(S.464)와 〈CBDC Anti‑Surveillance State Act〉(H.R.5403, H.R.1919) 두 가지다.
먼저 2025년 2월 상원에 상정된 〈No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Act〉는 연준 이사회(Board of Governors), 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s), 재무부 등 어떤 기관도 CBDC를 개인에게 직접(direct) 혹은 디지털 통화 중개기관(custodial intermediary)을 통한 간접(indirect) 방식으로도 발행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으며, 개인 명의 계좌 개설, 유지, 금융서비스 제공, 그리고 미국 정부가 발행한 디지털 통화를 자산(asset)이나 부채(liability)로 보유하거나 이를 Section 2A 통화정책 요건 일부로 활용하는 행위까지 일절 허용하지 않는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하원에서 발의된 〈CBDC Anti‑Surveillance State Act〉는 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제약을 담고 있는데, 이 법안은 연준이 CBDC를 직접 발행하거나(direct issuance), 민간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 발행(indirect issuance)을 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CBDC를 통화정책 수행(monetary policy implementation)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뿐 아니라, 아예 CBDC 관련 연구(research), 시험(testing), 개발(development) 활동 자체를 법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특히 이 법안은 CBDC를 "미국 달러로 표시된(denominated in U.S. dollars), 연준 시스템의 직접 채무(direct liability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로 정의함으로써, 연준이 발행하는 모든 형태의 디지털 화폐를 포괄하고 있으며, 그 대신 “공개적(open), 허가 없이 접근 가능하며(permissionless), 프라이버시를 보장(private)”하는 형태의 민간 디지털 달러 기반 통화는 예외로 설정해 놓음으로써 민간 암호화폐와의 공존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안 발의의 표면적 명분과 숨겨진 속내
이러한 법안들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금융 프라이버시 보호와 정부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견제하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데, 대표 발의자들은 “CBDC는 미국 정부가 국민의 금융 거래를 실시간으로 추적·검열할 수 있는 위험한 감시 도구(surveillance tool)”라며, “중국처럼 정부가 돈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체제는 막아야 한다”는 경고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CBDC가 민간 결제시장을 대체하게 되면 금융의 자유(monetary freedom)와 민간 선택권(choice)이 침해될 수 있다는 논리도 제시되며, “CBDC가 등장하면 결국 정부 통제 화폐만 남게 되고, 이는 혁신과 경쟁을 억압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속내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CBDC는 민간 암호화폐(crypto asset)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통화 모델이기 때문에, 암호화폐 산업에 우호적인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CBDC 도입은 곧 암호화폐 시장의 위축”이라는 위기의식이 퍼져 있으며, CBDC 금지 법안은 곧 크립토 보호법(crypto protection act)이라는 기능을 하게 된다.
또한 이들 법안은 보수 진영이 강조하는 반중(反中) 정서와 정부 불신 담론을 한데 묶어, “중앙정부가 디지털 머니를 통제하게 되면 미국이 중국처럼 된다”는 이념적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공화당 유권자층의 반정부·친자유주의 정서와 완벽히 맞물리며, 실제로 법안을 발의한 의원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이라는 점이 이러한 전략성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CBDC가 도입될 경우, 연준의 역할이 ‘결제 네트워크 운영자’로 확장되고, 기존의 민간 은행 시스템과 직접 충돌하게 되는데, 이 구조 자체가 탈중앙화 금융(DeFi)을 중시하는 암호화폐 진영과 철저히 대립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디지털 머니? 아니지. 탈중앙이어야지!”라는 문구는 이들 정치인의 구호이자 암호화폐 지지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슬로건이 되었다.
크립토 산업의 후원을 받은 정치인들
실제로 이러한 CBDC 금지 법안에 앞장선 정치인들 중 상당수는 암호화폐 산업으로부터 공식 후원을 받았거나, 크립토 진영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들로 확인된다.
우선,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Ted Cruz, R‑TX)는 《CBDC Anti‑Surveillance State Act》 공동 발의자로, CBDC를 “정부 감시와 통제의 도구”라며 강하게 반대한 대표적 정치인이다. 그는 과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참석해 "비트코인은 자유를 의미한다"고 발언하며 크립토 커뮤니티의 절대적 지지를 얻었으며, 암호화폐 후원금 수령 내역이 공개된 바 있다.
하원에서 같은 법안을 대표 발의한 톰 에머(Tom Emmer, R‑MN)는 "CBDC는 연준 관료들에 의한 통제"라고 비판하며 "Crypto's top champion on Capitol Hill"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인데, Politico와 OpenSecrets에 따르면 그는 2022년 한 해 동안 미국 연방의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암호화폐 후원금을 받은 의원이었다.
또한 하원의원 바이런 도널즈(Byron Donalds, R‑FL)는 디지털 자산 규제와 관련된 법안 통과에 찬성하며, CBDC는 자유에 대한 위험(dangerous threat to freedom)이라고 강하게 반대했고, 크립토 진영의 정치적 활동 PAC로부터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여기에 신디 루미스(Cynthia Lummis, R‑WY) 상원의원도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비트코인 보유를 공공연히 밝혀온 정치인으로,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입법을 꾸준히 추진해왔으며, CBDC에 대해서는 “정부 통제가 지나치며 민간 혁신을 억압한다”고 비판하며 금지 법안에 찬성했다.
이 외에도 Warren Davidson(R-OH), Josh Hawley(R-MO) 같은 의원들 역시 크립토 산업의 후원을 받은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탈중앙 기술(DeFi)을 옹호하며 CBDC 반대 진영의 핵심 세력으로 활동 중이다.
결론
결국, 연준의 CBDC 발행을 금지하려는 법안은 단순한 기술적 논쟁을 넘어, 프라이버시 vs 통제, 중앙화 vs 탈중앙화, 정부 vs 시장, 연방 vs 주, 디지털 혁신 vs 정치 선동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이를 주도하는 정치인들은 공화당 소속이면서 동시에 암호화폐 진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로, 그들의 입법 행위는 ‘자유 보호’를 외치지만, 그 속에는 크립토 보호와 정치적 득실이라는 복합적 동기가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