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다.

by 김창익

닉슨 쇼크 이후, 은행이 대출로 화폐를 공급.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단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되고, 세계는 실물 자산에 기반하지 않은 신용 화폐 체제로 급격히 이행하게 되었다. 이른바 ‘닉슨 쇼크’라 불리는 이 사건은 단순한 통화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화폐의 본질을 실물 보증에서 신용 창출로 전환시킨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금본위제가 해체되자, 화폐는 더 이상 희소한 실물 자산에 의해 제한되지 않았고, 중앙은행의 통제하에 무제한적으로 발행 가능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화폐 공급의 중심축이 정부에서 민간 금융기관, 특히 은행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제 화폐는 중앙은행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대출을 실행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구조가 되었다. 즉, 신용은 곧 화폐가 되었고, 돈은 빌릴수록 증가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가장 강력한 신용 창출 수단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모기지(Mortgage), 즉 주택담보대출이다. 주택은 물리적 실체가 있으며 담보 가치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손실 위험이 적은 ‘이상적인 대출 대상’이었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Fannie Mae와 Freddie Mac 같은 준공기업을 통해 대출 채권을 유동화하고, 이를 금융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그 결과 모기지는 은행의 회수 책임을 벗어나 시장에 팔아넘길 수 있는 유동화 자산으로 변모했고, 대출은 제한 없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주택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신용을 끌어올 수 있는 자산, 곧 **부채 창출의 기초자산(Underlying Asset)**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개인은 더 이상 소득이 아니라 보유 자산을 기준으로 대출을 받았고, 그 대출은 다시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리며 자산 가치와 신용 한도를 동시에 팽창시키는 ‘자산-부채의 상승 순환’을 형성했다. 이렇게 해서 모기지를 중심으로 한 금융화된 자산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게 되었고, 이는 1980년대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구조적 추세를 만들어냈다.


결국 닉슨 쇼크 이후 대출이 폭증한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히 금리를 낮췄기 때문이 아니라, 신용 화폐 체제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주택’이 화폐 창출의 도구로 편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2008년 금융위기로 한차례 붕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로벌 금융 구조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닉슨 쇼크 이후의 세계는

‘돈이 있어야 집을 사는’ 시대에서

‘집이 있어야 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로 이행했다.

모기지는 그 거대한 구조 전환의 기폭제였고,

대출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 장치가 된 것이다.


주택 담보대출이 금융위기로 이어져.


닉슨 쇼크 이후 신용 화폐 체제가 정착되면서, 은행은 실질 자산의 보유량과 무관하게 대출을 확대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된 수단이 바로 주택담보대출, 즉 모기지였다. 주택은 담보 가치가 명확하고 가격이 꾸준히 상승한다는 믿음 아래, 은행들은 이를 기반으로 한 대출을 대량으로 실행했고, 그 대출채권은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같은 준공공기관에 의해 유동화되어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증권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기지채권은 점차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팔리며, 미국 주택시장에 몰려든 자금은 다시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순환을 반복했다. 주택 가격 상승은 대출자의 신용도를 높이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대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실질 소득과 관계없이 주택을 담보로 더 큰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그 자금은 다시 소비와 자산 매입에 쓰이면서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유동성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이 구조는 매우 불안정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었다. 주택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가 무너지면, 담보의 가치는 급락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모든 금융 상품의 신뢰도도 동시에 붕괴된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은행들은 점차 신용 등급이 낮은 차주, 이른바 서브프라임 계층에게까지 대출을 확대했으며, 이들의 채무불이행 위험이 시장 전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부실 채권들이 복잡하게 쪼개지고 포장된 채, 안전한 금융상품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에 퍼져 있었다는 점이다. 신용평가사들은 높은 수익률에 현혹되어 이들을 고등급으로 평가했고, 투자은행들은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명목 아래 구조화된 상품을 대량 판매했다. 이로 인해 시장은 위험을 분산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 전반에 위험을 고르게 배포하게 되었고,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자 전 세계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금융 상품이, 과도한 신용 창출과 잘못된 위험 평가, 금융공학의 남용을 통해 글로벌 시스템 위기로 전이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발생했고, 이는 단순한 주택 가격 하락이나 대출 부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용 기반 자산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경고였다.


이 사건은 현대 자본주의가 얼마나 자산에 기반한 신용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며, 그 핵심에는 모기지를 통해 창출된 인위적인 유동성과, 그것을 위험 없이 반복 가능하다고 믿은 시장의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위기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제임스 리카즈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를 단순한 디지털 자산의 통화화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를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세계가 신용 화폐 체제로 전환하면서 겪었던 대규모 신용 팽창의 역사와 정확히 겹쳐지는 현상으로 본다. 닉슨 쇼크는 금본위제의 붕괴를 의미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화폐의 발행이 실물 가치와 단절되고, 대출과 신용 창출을 통해 무제한적으로 화폐 공급이 가능해진 전환점이었다. 그 결과, 은행들은 자산을 담보로 삼아 대출을 확대했고, 특히 모기지를 중심으로 한 금융 상품의 남발은 2008년 금융위기로 귀결되었다.

리카즈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는 이와 유사한 구조를 디지털 세계에 복제하는 행위에 가깝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와 같은 기존 법정통화에 가치를 연동시키지만, 그것이 실제로 법정화폐의 준비금에 의해 충분히 담보되지 않는 한, 본질적으로는 '신용에 기반한 화폐'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되고 은행 및 기업이 이를 본격적으로 결제 수단이나 담보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 그 자체가 하나의 신용 창출 메커니즘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처럼 보이지만, 중앙은행과 무관하게 화폐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이 되며, 이것이 금융 시스템 전체에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흘려보내는 관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 발행 주체가 발행량을 조절하는 구조에서는, 통화량의 급격한 팽창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처럼 실질 가치보다 신용 기대에 의존하는 자산을 기반으로 금융 상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식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카즈는 이러한 유동성 팽창이 단기적으로는 디지털 금융의 활성화와 자산 시장의 활황을 유도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실제 경제활동과 무관한 화폐 공급의 증가가 존재하며, 이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에 기반한 자산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더욱이 이 거품은 법정통화 시스템의 안정성마저 위협할 수 있으며,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크게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리카즈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가 금융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감춰진 새로운 형태의 그림자 금융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규제 사각지대에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다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기술로 보지 말고,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신용 창출의 규모와 속도에 대해 정치적, 제도적, 철학적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제임스 리카즈는 누구인가.


제임스 리카즈는 미국의 경제사학자이자 변호사, 그리고 국제 금융 전략가로, 현대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불안정성과 통화 체제의 변동성을 주제로 날카로운 통찰을 제시해온 인물이다. 그는 단순한 이론가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방부, 재무부 등 국가기관의 자문역으로 활동하며 복잡계 금융 모델을 기반으로 한 위기 대응 시뮬레이션 작업에 직접 참여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금융 시스템의 위기가 어떻게 설계되고 증폭되는지를 실무적으로 체득한 보기 드문 전문가다.


특히 그는 1998년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안긴 장기자본관리(LTCM) 사태 당시, 법률 고문으로서 위기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그 경험을 계기로 금융 위기가 시장의 실패만이 아니라 정책과 구조의 실패라는 관점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통화 전쟁, 신용 붕괴, 화폐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저서를 연달아 출간하며, 국제 경제의 흐름 속에서 위기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분석해왔다.


그의 대표작인 『통화 전쟁』에서는 각국이 자국 통화를 무기 삼아 벌이는 환율 경쟁과 달러 패권의 균열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고, 『화폐의 죽음』에서는 신용 화폐 체제의 한계와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의 귀환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파국으로 가는 길』에서는 글로벌 엘리트들이 어떻게 위기를 관리하거나, 경우에 따라 의도적으로 조장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금융 시스템의 정치적 성격을 날카롭게 드러냈다.


리카즈는 중앙은행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도 실물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며, 이와 같은 통화정책은 오히려 자산 시장에만 거품을 만들어 다음 위기의 씨앗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가 자산 기반의 신용 시스템 위에 precariously 놓여 있으며, 금본위제에서 벗어난 이후 이 시스템은 이미 자생적 안정성을 상실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의 제도화 역시, 표면적으로는 금융 혁신처럼 보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닉슨 쇼크 이후 시작된 신용 창출 시스템의 또 다른 변형일 뿐이며, 그 구조가 반복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요컨대 제임스 리카즈는 금융을 단순한 경제 행위가 아닌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권력의 장으로 파악하며, 반복되는 위기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일관되게 지적해온, 이례적으로 실전적이고 철학적인 금융 사상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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