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결혼 구역
2025년 현재,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초고가 아파트 '래미안원베일리' 일부 입주민들이 결혼정보회사를 직접 차리고, 가입비 최대 1100만원을 받으며 단지 내 미혼 남녀를 중심으로 소개팅 사업에 나섰다. 이들은 과거 입주민 간에 비공식적으로 소개팅을 주선하던 모임을 법인화해, 이제는 외부인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유료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구조를 갖췄다. 심지어 학력, 직업, 수입 등을 기준으로 회원을 '실버', '골드', '로열·빌리언' 등으로 등급화하고, 등급에 따라 소개팅 횟수와 상대방 수준도 차등을 두었다.
핵심은, 이들이 '어디에 사느냐'를 기준으로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는 자격을 판단한다는 점이다. 래미안원베일리는 전용 59㎡가 40억 원이 넘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초고가 아파트다. 이곳에 산다는 사실 자체가 ‘상류층 인증’이 되고 있으며, 이제는 결혼 시장에서도 그 주소가 신분증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신분을 결정하는 기준이 혈통, 가문, 출신지 같은 태생적 조건이었다면, 산업화 이후에는 학력과 직업, 소득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동산—특히 서울 강남의 초고가 아파트—가 새로운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직업도, 학벌도, 수입도 어느 정도까지는 흙수저가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40억짜리 아파트를 사는 것은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부동산 자산을 통해 ‘어디에 사느냐’가 곧 그 사람의 출신 계급을 나타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결혼정보회사는 단순히 연애를 돕는 기업이 아니라, 부동산 자산 중심의 신 계급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한 관계자는 “출자한 사람들이 특정 조건의 사람과만 만나고 싶어 해서 만든 시스템”이라고 밝혀, 그들끼리만 결혼하고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폐쇄성과 배타성을 숨기지 않았다.
이제 결혼조차도 신분에 맞춰 ‘끼리끼리’ 하는 시대. 주소지가 곧 신분증이 되는 이 현실은, 단순한 웃음거리로 넘기기엔 너무도 선명하게 사회의 구조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똘똘한 한채 선호 현상 뚜렷...구매력을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
2025년 8월 초 현재, 서울 아파트 시장은 정부의 대출 규제와 경기 둔화 우려 속에 전반적인 거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6월 말 발표된 6·27 대출 규제 이후, 서울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급감했다. 7월 한 달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거래량은 전월 대비 61% 이상 줄었고, 마포·성동 등을 포함한 한강변 7개 지역 역시 84% 넘게 감소했다. 시장 전반이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관망세로 돌아선 가운데, 실거래는 일부 고가 단지에만 집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한강벨트 주요 단지에서는 거래량이 매우 적은 가운데서도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다. 예컨대, 강남구 압구정 현대 14차 전용 84㎡는 2025년 7월 65억 원에 거래되었는데, 이는 불과 한 달 전보다 13억 원 오른 금액이다. 같은 달, 신현대 12차 전용 108㎡ 역시 올해 2월 최고가보다 7억 원 이상 높은 69억 7000만 원에 팔렸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116㎡도 1월보다 11억 5000만 원 오른 81억 원에 매매됐다.
이와 같은 현상은 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소위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래량은 줄었지만, 특정 고가 아파트는 여전히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으며, 매물이 나오자마자 바로 거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는 고소득층의 자금력이 규제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점과 연결된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실수요층의 구매력을 제한한 반면, 유동성이 충분한 부유층은 변동성이 낮고 희소성이 높은 고급 주택을 자산 저장 수단으로 선택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고가 아파트 한 채가 실거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단기간 내 처분하지 않더라도 안정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은 여전히 신뢰받는 자산인 셈이다.
결국, 2025년 중반의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전체 거래는 위축됐지만, 특정 지역과 특정 단지를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비대칭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규제 속에서도 부유층의 선택지가 명확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른바 ‘베블런 효과’가 지속되고 있는 강남과 한강변은 여전히 예외적인 시장으로 남아 있다.
인플레이션이 내 지갑을 약탈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이어왔다. 이른바 ‘돈을 찍어내는 경제 실험’이었다. 금리는 0%대까지 떨어졌고, 시장에는 돈이 넘쳐났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해졌다. 실물경기는 과열과 침체를 반복하며 불안정해졌고, 자산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미국 경제 전문기자 크리스토퍼 레너드는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구조가 금융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했지만, 자산 불평등과 소득 격차를 심화시켰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자산을 가진 계층은 초저금리 속에 더 많은 자산을 확보했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수혜를 입었다. 반면 고정 소득에 의존하는 계층, 특히 연금생활자나 은퇴한 노년층은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다.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이고, 물가는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연금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숫자상 연금 수령액은 그대로지만, 생활비는 해마다 증가해 실제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연금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은퇴 부부의 최소 생활비는 월 217만 원, 적정 생활비는 296만 원으로, 10년 전보다 약 32% 증가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10년 내 적정 생활비는 400만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200만 원으로 가능하던 은퇴 후 삶이, 이제는 300만~400만 원 없이는 유지가 어려워진 셈이다.
인플레이션은 특히 은퇴자에게 조용하지만 실질적인 위험 요소다. 현금의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그에 대한 대안 자산을 찾기 어려운 고령층일수록 대책이 부족하다. 소득은 고정돼 있는데 지출은 늘어나고, 자산을 운용할 기회나 정보 접근성에서도 상대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통화량의 과도한 확대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해왔다. 중국 송나라 시절 교자(交子)는 실용적인 화폐였지만, 과도한 발행으로 결국 물가 폭등과 경제 혼란을 초래했다. 현대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달러, 스테이블 코인 등의 대안 화폐가 부상하는 가운데,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약화될 경우 인플레이션 통제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종합하면,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니라 구조적 양극화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산을 가진 이들은 상승하는 물가 속에서 자산의 가치도 함께 올랐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소득 정체와 실질 구매력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초과할 경우, 부의 불평등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레너드, 피케티, 그리고 각종 실증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자산 격차를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장기적으로 소득을 창출하고, 축적한 자산을 인플레이션 이상의 수익률로 운용하는 것이다. 노후의 평안을 원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물가 상승의 속도를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