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록히드마틴에서 앤듀릴로...방산 패러다임의 이동

by 김창익

중국 속도전과 ‘뉴디펜스 동맹’의 제안


미국 방위산업 스타트업 앤듀릴(Anduril)의 창업자 파머 러키는 최근 발언에서 한국을 매우 이례적으로 콕 집어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드론과 조선(특히 군함 제작) 분야에서 이미 미국보다 우위에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미국의 첨단 군사력과 결합하면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중국이 드론, AI, 자율 무기, 함정 제조 등 여러 첨단 분야에서 미국을 기술적으로 3~5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중국의 강점은 ‘속도’다. 기술을 개발하고 실전 배치하는 주기가 미국보다 훨씬 짧다. 반면 미국 방산업은 과도한 관료주의, 복잡한 승인 절차, 느린 생산 속도라는 구조적 병목을 안고 있다.

그래서 러키가 제안한 것이 바로 ‘뉴디펜스 동맹’이다. 그는 한국에 연구·개발(R&D)과 생산 거점을 설치하고, 내수·수출·공급망을 아우르는 공동체계를 만들자고 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 협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반도체 동맹처럼 방산에서도 기술·생산·유통을 묶어 글로벌 전략 공급망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AI와 드론이 무너뜨리는 전통 방산 구조


전통 방산 산업은 수십 년간 몇몇 대형 기업이 독점해 왔다.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온, 노스럽그러먼 같은 거대 기업들이 전투기, 탱크, 구축함, 잠수함 등 초고가·대형 무기를 개발하고 납품하는 구조였다. 이런 무기는 한 번 개발에 착수하면 수년에서 10년 이상이 걸리고, 계약 기간도 길어서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됐다. 월가 입장에서는 ‘확실한 배당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AI와 드론은 이 구조를 정면에서 흔들고 있다. 드론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제작 단가는 기존 전투기·헬기의 수십~수백 분의 1 수준이다. 여기에 AI를 결합하면 표적 탐지, 자율 비행, 임무 수행, 경로 최적화 등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전장 데이터 → 분석 → 타격’의 전 과정이 인간 명령 없이 수 분 내에 가능해진다.

이 변화는 무기의 개념 자체를 바꾼다. 과거에는 한 대 잃으면 큰 손실이었던 무기를, 이제는 소모품처럼 쓰는 ‘대량 투입-소모전’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상용 드론을 개조한 자폭 드론이 러시아 전차를 파괴하거나, DJI 드론이 실시간 포격 좌표를 전달하는 장면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통 방산 대기업이 만든 대형 무기보다, 빠르고 저렴한 민간·스타트업 기술이 전장에서 더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월가와 기존 방산 패권의 균열


AI와 드론의 부상은 월가의 방산 투자 철학에도 균열을 만들고 있다. 기존의 방산 대기업들은 수십 년짜리 대규모 프로젝트에 맞춰 조직과 공급망을 운영한다. 한 번 계약을 따내면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되고, 배당도 꾸준하다. 하지만 AI·드론 중심의 무기 체계는 개발 주기가 짧고, 개당 가격이 낮으며, 주문이 단기 반복되는 특성을 지닌다. 이는 ‘장기 안정형 수익’을 선호하는 월가의 투자 논리와 맞지 않는다.

반대로, AI 소프트웨어 기업, 위성통신 회사, 반도체 설계사, 첨단 센서 업체가 방산 분야의 주요 수혜주로 떠오르고 있다. 월가는 전통 방산 ETF(XAR, ITA) 비중을 줄이고, AI·드론·위성 관련 종목을 신규 편입하는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뮬레이션하면, 2024년 현재 기존 대기업이 약 80%를 차지하는 글로벌 방산 시장 점유율은 5년 뒤 절반 수준까지 내려가고, 나머지를 스타트업과 빅테크가 나눠 가질 가능성이 크다.


빅테크 vs 월가: 방산 패권의 새로운 전장


전통적으로 방산 패권은 ‘월가 자본 + 대형 방산 대기업’의 폐쇄형 네트워크가 장악했다. 월가는 자금을 제공하고, 방산 대기업은 정치·로비·군사 네트워크를 통해 장기 계약을 확보한다. 그러나 빅테크가 방산의 한 축으로 들어오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다.

AWS·Azure 같은 클라우드 플랫폼은 군의 데이터 운용을 맡고, 스타링크는 전장의 통신 인프라를 제공하며, 팔란티어와 오픈AI는 AI 기반 전장 분석을 담당한다.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은 AI 무기 시스템의 필수 칩을 공급한다. 빅테크의 강점은 기술 개발과 배포 속도, 글로벌 민간 네트워크, 최고급 인재풀이다. 이들은 민간에서 이미 수익을 내던 기술을 군사화함으로써, 전통 방산 규제 장벽을 상당 부분 우회할 수 있다.

양측의 충돌은 세 가지 지점에서 나타난다. 첫째, 계약 구조의 차이. 월가+대기업은 장기·대규모 프로젝트를, 빅테크는 단기·다품종 계약을 선호한다. 둘째, 권력 기반의 차이. 전통 방산은 정치와 군사 네트워크를, 빅테크는 기술과 데이터 인프라를 지배한다. 셋째, 자본 흐름. 빅테크의 방산 매출이 가시화되면 월가 자금이 기존


방산주에서 테크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빅테크 부상을 가속화한 전환점이었다. 스타링크가 제공한 통신망, 팔란티어의 AI 분석, 상용 드론의 실전 활용이 기존 무기보다 전장에서 더 빠른 효과를 발휘했고, 이는 군부와 투자자 모두에게 ‘빅테크 없는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미래 시나리오와 전략적 함의


앞으로 방산 패권 구도는 세 가지 방향 중 하나로 흘러갈 수 있다.

동맹형 구조: 전통 방산 대기업이 빅테크와 손잡아 기술·자본·정치력을 통합하는 모델. 월가는 이 연합체에 투자해 지배력을 유지한다.

분리형 패권: 전통 방산이 전투기·함정 등 대형 플랫폼을, 빅테크가 드론·AI·위성 등 신흥 무기체계를 맡아 시장을 양분한다.

빅테크 주도 전환: 첨단 기술의 비중이 커지면서 빅테크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월가는 방산 투자의 무게 중심을 테크 중심 포트폴리오로 이동시킨다.

이 어느 시나리오든 공통점은 명확하다. 방산과 민간 기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속도·유연성·민간 혁신’이 방산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한국이 이런 흐름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이면, 단순한 무기 수출국을 넘어 ‘글로벌 방산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을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지정학적으로 더 깊은 전선에 서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빅테크에 부는 적색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