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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익 칼럼] 난징대학살은 누구의 책임인가.

- 전쟁, 국가가 없는 상태의 국민은 어떻게 되는가?

by 김창익


난징기념관.jpg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 세워진 조각상. '나의 국가는 지금 어디에 있나?'하고 탄식하는 듯 하다.


난징 대학살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본인가.


가해자는 분명 일본이다. 1937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6주간 30만명의 중국인(중국측 추산)을 학살했다. 피살자 수는 추산이지만, 일본이 저지른 대학살이란 점은 역사적 사실이다.


일본만의 잘못인가.


처참한 결과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수도 시민을 사지에 남기고 피신한 장개석 당시 수반은 어떤 책임이 있을까.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만인간 투쟁상태다. 경쟁과 두려움, 명예를 위해 인간은 폭력을 행사하고 죽이며, 심지어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는다.


이같은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리바이어던이란 괴물을 만들었다. 국가에 권력을 위임해 집중시키고 만인간 투쟁이란 피곤한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게 홉스의 생각이다.


이렇게 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만국간 투쟁상태다. 자연상태에서 만국은 만국에 대한 투쟁을 한다. 국가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빅 리바이어던'이 없다면, 국가간 전쟁은 불가피하다.


전쟁은 자연상태다. 권력이 집중된 국가의 폭력은 개인보다 훨씬 가공할 만 하다. 이같은 투쟁상태에서 어느 한쪽이 국가 상태를 벗어났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할까. 폭력 행사에 대한 권한을 국가에 위임한 개인들은 나약하기 그지 없다. 막강한 폭력과 나약한 다수 개인간 싸움의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


보복은 폭력의 주요 요인이다. 가해자가 말살을 택하는 건 보복의 씨앗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따라서 학살은 주로 대규모로, 집요하게 이뤄진다. 난징을 점령한 일본은 실제 그렇게 했다. 양민들이 도주하거나 살아남을 경우 언제 보복의 칼날이 제 목에 들어올 지 모를 상태에서 일본의 선택지는 사실상 정해졌었다. 기자는 지금 절대 일본의 만행을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다. 법의 심판은 자연상태에서의 인간 행위를 제약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다. 일본의 만행이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이유다.


다만 '대량 피살이란 보이는 결말을 못본척한 당시 중국 정부는 과연 무죄인가?'를 묻는 것이다.


논리의 힘은 위대하다. 모든 행위에 대한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중국 전체의 안위를 위해 난징을 포기했다"고 할 수도 있다. '후일 도모'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시 수반은 보다 큰 시야에서 사안을 판단했을 수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무국가 상태 자국 국민이 다른 국가의 폭력 앞에서 참혹하게 희생된 역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취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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