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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플랫폼', 똥을 위로 쌀 수는 없잖아

- 권력은 아래로 똥을 싸는 것이다

by 김창익

영화 '더 플랫폼'은 '666인분의 성찬을 666명이 어떻게 나누어 먹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가 먹을 수 있다는 이상이 누군가는 굶어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준다. 여자아이를 메시지로 플랫폼에 실어 보내면서, 인간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가를 묻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주인공 고렝이 이모구리에게 현실을 깨우쳐주듯 툭 내뱉는 "똥을 위로 쌀 수는 없잖아"이다. 이 대사는 권력이 계층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33층에서 이모구리는 매일 반복적으로 아랫층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플레이팅 된 것만 먹고 똑같이 플레이팅해 아랫층에 내려보내라"고.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 모든 사람이 333층까지 이타심을 발휘한다면 666명은 굷지 않고 6개월을 버틸 수 있다는 게 이모구리 생각이다. 짐작한 대로 아랫층 사람들은 이모구리의 호소를 무시한다. 88층에서 자기들도 굶다가 이제서 야 34층에 올라왔다는 것이다. 다시 아랫층에 내려가 인육을 먹게되는 극단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지금 이순간을 만끽하겠다는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선 행복을 절대 저축할 수 없다. 욕망을 유보할 수 없는 것이다.


보다 못한 고렝이 아랫층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이모구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일부터 쌀 한톨까지 똥에 버무려 내려보내겠다는 협박이다. 아랫층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윗층의 말을 듣는다. 권력은 이익을 뺐거나 손해를 주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작동한다. 피지배자는 반대로,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손해를 피하기 위해 복종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자유의지를 꺾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게 권력을 본질이다. 권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그래서 똥은 절대 위로 쌀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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