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전시는 내 인생 첫 개인전에서 끝났다. 개인전을 하고 난 후 웃기게도 모든 현실이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개인전을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남들이 직장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게 다른 시작인 줄 몰랐다.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부분이 가장 혼란스러웠다. 주변 작가들에게 의지할 곳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크기만큼의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씁쓸했다.
"그림을 팔아서 생활을 하면 되잖아!!"
나는 설치작업을 했다.
"그게 뭐 하는 건데?"
대부분 미술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던 질문이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내가 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요즘 시간이 많아 그런가 자꾸 지나온 나날을 돌아본다. 한 번쯤 인생에 이런 시간이 필요한 거 같고 그 시간이 나에겐 지금인가 보다. 지난날의 나를 정리하고 다음의 나로 살아가기 위한 시간.
내 공식적인 경력은 15년 단절되었다. 개인전 이후 사무소 차고에서 하는 전시기획을 지원하고 차고 공간을 제공받았다. 그곳에서 내 또래의 작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거창한 제목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그때 한 고민이나 지금의 고민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복지재단에서 하는 사업에 신청하려면 예술인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내가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라는 것을 증명받아야 하는데 공식적인 내 경력은 단절되었다. 그래서 경력단절로 신청을 했다. 사유는 돈벌이를 위해 회사에 다닌 것. 당연하게(?) 거절을 당했다. 허무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어딘가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의가 왔었다. 당시 아무 작업도 하지 않고 지내던 나는 두려웠다. 도망치기 바빴다. 메일을 읽고 거절을 했다. 그 전시라도 했으면 경력단절이 아니게 됐으려나? 이미 지나간 일을 자꾸만 들춰내 본다.
당시 스스로가 초라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미술에 대한 환상이 점점 깨져가고 있었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내 울타리를 타인들이 자꾸만 넘어왔고 끝내 지키지 못했다.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봤다. 이 당시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 있었다. 난 모르겠어. 너무 어려운 것 같아. 너무 어렵다. 어려워.. 뭐가 그리 어려웠을까?
경력이 단절된 작가들끼리 서로 중고신인이라 불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인이긴 한데 경험이 있는지라 중고다. 중고신인. 다시 같은 길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지난날을 돌이키며 정리를 해본다. 또다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어차피 한번 가본 길이니 마음을 더 단단하게 먹기 위해서. 한번 포기해봤고 다시 돌아왔다. 아 그래 어려운 인생 까짓 거 살아보지 뭐. 나만 어렵겠어? 이런 생각. 맞다. 사실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이 너무 많았더니 사는 게 무서워졌다. 그냥 생각 없이 적당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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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자인데요. 서른일곱이고요. 결혼은 안 했습니다. 비혼이냐고요? 모르겠어요. 저도. 언제 결혼할 거냐고요? 모르겠어요. 저도. 직업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을 했는데 그게 돈벌이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무엇을 직업으로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서른일곱 해를 살았는데 아직도 모르겠어요.라고 아는 언니에게 얘기했더니 “나도 아직 모르겠어. 인생이 원래 그래.”라고 한다. 다행이야.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