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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Feb 04. 2023

아카데미 작품상 코다에 대한 다차원적 고찰

영화에서 악보로


<상대성 나라의 앨리스>

끊임없이 달리는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소리쳤다. "쉬지 않고 달려야 겨우 제자리를 지킬 수 있어. 앞으로 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라야 하고. 그러니 닥치고 뛰어!”

어떤 토끼보다도 앞장서 달리던 앨리스는 문득 궁금해졌다. '왜 앞으로여야만 하지?' 앨리스는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주변 모든 것들이 빛의 속도로 그녀를 지나쳤다. 그리곤 모든 선을 축으로 삼아 무지개 끝자락처럼 팔방으로 흩어졌다. 앨리스는 비로소 차원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은 윗면이었던가?

결승선은 직선 위에 있지 아니하였다.



악상기호 중에 코다란 게 있어요. 동그라미 가운데로 수직선 수평선이 교차하는 모양이죠. 스나이퍼 조준경처럼도 생겼고요. coda는 이탈리아어로 꼬리라는 뜻이에요. 연주를 하다가 이 친구가 나오면 똑같이 생긴 쌍둥이 친구가 자리한 곳으로 건너뛰어요.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차원의 문 같지요. 양자역학과 아무 상관은 없지만, 서로 얽혀있는 두 코다 사이엔 마치 퀀텀리프라도 한 것 같은 공간이 열려요. 나 없인 너도 없는 둘도 없짝꿍예. 같은 짝꿍이라도 도돌이표랑은 달라요. 달세뇨, 다카포하고도 다르고요. 그 친구들은 뒤로 돌아가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게 일지만 코다는 새로운 지점으로 건너가게 해 주거든요.

전설적 포크 가수 조니 미첼의 노래 중에 <Both Sides Now>라는 노래가 있어요. 차분하니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예요. 최근 어느 영화에 이 노래가 나왔는데, 제94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은 《코다 CODA》라는 영화예요. 노래에 소질을 보이는 한 여학생과 그 가족의 이야기죠. 학생의 이름은 루비예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부모형제를 위해 지금껏 집안 통역사 역할을 해왔지만 음악 선생님의 진학 조언에 루비는 갈등해요. CODA는 영화 속 주인공의 처지를 뜻하는 줄임말인데, 농인 가정의 청인 자녀를 일컫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두문자어 acronym 예요. 맞아요, 여기 영화제목 코다는 악상기호 코다랑은 상관없어요. 영어와 이탈리아어만큼 달라요. 하지만 지금 말장난하려 건 아녜요. 이 코다와 저 코다가 어떻게 연결되는 지 지금부터 소상히 얘기해보려 해요.



대학 진학을 앞둔 십대 학생 루비가 인생의 전환을 맞는 중요한 순간에 조니 미첼의 이 노래가 나와요. 먼저 원곡 들으며 노랫말에 잠시 귀 기울여 봐요. 한 편의 시처럼 한 줄 한 줄 음미하는 맛이 있어요. 1절은 구름, 2절은 사랑, 3절은 인생에 대한 얘기예요. 좀 길어 보여도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3절 끝까지 꼭 읽어보시기 바라요. (노랫말은 제가 임의로 해석했어요)


조니 미첼 《Both Sides Now》


1)
Rows and flows of angel hair
줄지어 흐르는 천사의 머리카락
And ice cream castles in the air
공중에 떠있는 아이스크림 성
And feather canyons everywhere
곳곳에 흩어진 깃털 골짜기
I've looked at clouds that way
내 눈엔 구름이 그렇게 보였죠

But now they only block the sun
하지만 지금은 그저 태양을 가리고
They rain and snow on everyone
사람들에게 눈비를 퍼부어
So many things I would have done
구름만 아니었음 많은 일을 했을 텐데
But clouds got in my way
구름이 내 길을 막아섰어요

I've looked at clouds from both sides now
이제 난 양쪽에서 구름을 봐요
From up and down, and still somehow
위로도 아래로도, 그런데 여전히
It's cloud illusions I recall
기억에 남는 건 허상뿐
I really don't know clouds at all
난 정말 구름이 뭔지 모르겠어요

2)
Moons and Junes and Ferris wheels
수많은 밤과 여름, 그리고 대관람차
The dizzy dancing way you feel
당신이 추었던 아찔한 춤
As every fairy tale comes real
모든 게 이루어지는 동화처럼
I've looked at love that way
내 눈엔 사랑이 그렇게 보였죠

But now it's just another show
하지만 이젠 단지 쇼일 뿐
You leave 'em laughing when you go
웃음거리만 남기고 떠나요
And if you care, don't let them know
당신 마음을 알아채게 하지 말아요
Don't give yourself away
당신을 쉽게 내주지 말아요

I've looked at love from both sides now
이제 난 양쪽에서 사랑을 봐요
From give and take, and still somehow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죠, 그런데 여전히
It's love's illusions I recall
기억에 남는 건 오해뿐
I really don't know love at all
난 정말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3)
Tears and fears and feeling proud
눈물, 두려움 그리고 자존심
To say "I love you" right out loud
큰 소리로 사랑한다 외치기
Dreams and schemes and circus crowds
꿈과 계획과 서커스 관중들로
I've looked at life that way
내 눈엔 인생이 그렇게 보였죠

But now old friends are acting strange
하지만 이젠 친구들이 예전 같지 않아요
They shake their heads, they say I've changed
변한 건 나라며 고개를 젓죠
Well something's lost, but something's gained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죠
In living every day
그게 일상일 테죠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이제 난 양쪽으로 인생을 봐요
From win and lose, and still somehow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죠, 그런데 여전히
It's life's illusions I recall
기억에 남는 건 환영
I really don't know life at all
난 정말 인생을 모르겠어요


잔잔해서 더 멋진 노래예요. 1969년 앨범인데 가사 내용이 전혀 옛날얘기 같지 않죠. 루비가 왜 이 노래를 선곡했는지 납득이 가요. I've looked at clouds from both sides now. 어릴 땐 구름의 한쪽밖에 못 봤는데 지금은 장성하여 양쪽을 볼 수 있어. 조니 미첼의 노래는 그런 얘기를 해요. 루비는 그걸 자기 목소리로 삼은 거구요. now라고 했으니까, 아마 맞을 거예요. 성장통 같은 거죠. 그만으로도 충분한 울림이 있고요. 인생의 업 앤 다운을 다 깨우치게 됐다니 얼마나 어른스러워진 건가요 짝짝짝.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들었더니 좀 달리 들려요. '이제는 양쪽을 볼 수 있게 됐어'가 아니라 '이제껏 양쪽만 보아왔어' 아닐까? I've looked~라고 하니까 왠지 have pp 현재완료는 '지금까진 그랬지만 쩜쩜쩜' 같잖아요. 이제 구름의 위아래를 보게 되긴 했는데 그게 해피엔딩인진 잘 모르겠다고. 양쪽을 다 봤지만 그게 과연 전부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그러고 보니 원곡 가사후렴 끝마다 자꾸 뭘 모르겠다고 그러잖아요.


알량한 주입식 문법으로 시적 허용망칠 생각은 없어. 근데 한번 그렇게 들려버렸더 굉장히 다른 의미가 보이기 시작해요. 한쪽만 보다가 양쪽을 보게 되는 걸 성장으로 여기면서도 왜 우린, 그러고 나면 마치  장 다 본 것처럼 생각해버리고 말지? 높든가 낮든가, 이기든가 지든가, 두 가지를 다 터득했으니 오케이 졸업, 이제 그만 하산하여라?  헛헛하지 않나요? 저는 좀 아쉬운데요. 인생이 어디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으로 끝나던가요. 그다음엔 그다음의 시야가 또 열리지 않던가요. 깨달음엔, 완료형이 없는 거잖아요. (이쯤에서 노랫말을 다시 한번 음미하셔도 좋아요)





《코다》의 주인공 루비는 버클리 음대 입학이 걸린 마지막 오디션에서 조니 미첼의 노래를 불러요. 처음엔 자신 없는 목소리로 시작했다가 2층 객석 귀퉁이에 몰래 앉은 부모를 발견하고 수화를 더해 진심을 불러요. 이 영화엔 사실 원작이 있어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 La Famille Bélier》예요. 거기 주인공 폴라는 같은 장면에서 <비상 Je vole>이라는 프랑스 노래를 불러요.


Louane Emera 《Je vole》


Mes chers parents je pars
사랑하는 엄마 아빠, 전 떠나요
Je vous aime mais je pars
사랑하지만 그래도 떠나요
Vous n'aurez plus d'enfants
Ce soir
더 이상 당신들의 아이는 없어요

Je ne m'enfuis pas je vole
도망가는 게 아니라 날아가는 거예요
Comprenez bien je vole
제가 나는 걸 이해해 주세요
Sans fumée sans alcool
담배나 술은 안 해
Je vole, je vole
저는 날아요


첫 번째 노래보단 단순하죠. 그래서 더 명쾌한 측면도 있어요. 프랑스 주인공 폴라는 나이에 맞는 직설적인 선곡으로 자기 생각을 전해요. 뭔진 몰라도 일단 날아오르겠다고 해요. 하나든 둘이든, 정해진 틀을 일단 벗어나보겠다고요. 2차원 지면을 박차고 3차원 구름 위로 날아오른 폴라 앞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짜릿한 비상일 수도 있지만 아찔한 추락일 지도 몰라요. 뭐가 되든 분명한 건 미리 정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완료형 완성이 아니라 가능형 성장인 거죠. 이제, 영화 코다와 음악 코다를 이어볼게요.


코다에 코다를 물고


악상 기호 코다는 건너뜀이었어요. 도돌이표처럼 한 구간을 맴돌지 않고 미지의 지점으로 도약했어요. 폴라는 도망치지 않고 날았어요. 루비는 아이스크림 구름 위로 뛰어올랐어요. 그리곤, 멈추지 않았어요.


코다는 벽이 아니었어요. 코다는 문이었어요. 입구와 출구가 세트로 있는 문이었어요. 한쪽 문으로 들어가서 다른 쪽 문으로 나와요. 끝이 있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어요. 또 다음 편으로 향하는 차원의 통로였어요.


길은 하나만 있지 않아요. 상행선 하행선, 양쪽으로만 있는 것도 아녜요. 차원의 인터체인지를 높이면 어떤 공간 어떤 방향으로도 진행할 수 있어요. 구름 위로 날아가 거기서 또다시 뛰어오르면, 위아래 구분마저 사라진 우주를 만나게 될 지도 몰라요.




이상한 나라에서 하트 여왕을 만나고 돌아온 앨리스는 이번엔 거울 나라로 들어가 체스의 붉은 여왕에게 특훈을 받아요. 붉은 여왕은 아주 엄격하게 제대로 가르치지요. 어디 세상이 만만한 줄 알어? 앞만 보고 뛰어! 열심히 뛰지 않으면 곧바로 뒤처져버릴 거야. 저 직선주로 앞에 결승선 보이지? 모두들 죽어라 거기로 뛰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 (루이스 캐럴의 원작소설을 망칠 생각은 물론 당연히 없어요)


평행우주 속 상대성 나라로 향한 제3의 앨리스는 붉은 여왕의 훈계에 청개구리처럼 굴어보기로 해요. 결승선이 저 앞에 있다고? 꼭 그렇게 직선으로밖에 뛸 수 없는 걸까? 위로도, 옆으로도, 45도 사선으로 차원을 확장시켜서도 뛸 수 있지 않을까? 변화는 우주의 섭리니까 일단 뛰긴 뛰는데, 그렇다고 결승테이프가 직선 상에 딱 하나만 둘러있으란 법은 없잖아요. 그러면 등수도 거기서 그냥 그렇게 결정나고 말 것 같고, 게임도 딱 거기까지만이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요.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거 잘 알아요. 평행우주라고 다르지 않겠죠. 그렇다고 인생에 라운드마저 딱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1라운드를 통과하면 2라운드가 있듯이 또 그다음엔 3라운드가 있고. 한 단계 지날 때마다 그다음 단계를 기대하는 그런 재미가 있어줘야죠. 집을 떠나 학교로 가고, 학교를 졸업하면 사회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 사랑을 했다가 그 사랑 때문에 또 실망도 하고. 아직 아무 결과도 안 정해진 라운드들이 사방으로 펼쳐진 게임. 조금씩 아이템을 늘려가면서 지도 위 가려진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언젠가 끝판왕을 만나게 될 때 후회 없이 한 판 붙어볼 수 있겠죠. 영화는 끝났는지 몰라도, 폴라와 루비의 게임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일 거예요. 코다에 코다를 물고, 다음 라운드로 업그레이드 되는 중독성 짙은 시뮬레이션 게임. 평면에서 공간으로의, 차원을 뛰어넘는 비상.




이야기가 여기서 저기로 너무 널을 뛰었다 도 할 수 없어요. 어차피 인생을 여행하다 보면 끊임없이 구름 위아래를 널뛰게 돼요. 그럴 땐 RUN 말고 TAKE OFF 해야 해요. 이번 코다를 이륙하면 어느 코다에서 착륙하 될지 그건 도약을 해봐야 알아요. 쉽진 않지만 도전해 볼 만은 할 거예요. 구름 너머에서 어떤 차원의 인터체인지를 올라타게 될까, 그런 기대로 살면서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ARAFURA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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