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들어본 말. 흔히 잘 쓰이는 말. 《논어》의 주옥같은 구절들 중 대표적인 공자의 말.
'길을 가는 셋 중 하나는 반드시 내 스승이다'라고, 누구에게나 배울 점은 있다는 계몽적 의미로 배워 살아왔다. 그런데 넷도 아니고 열도 아닌 왜 하필 셋일까? 그저 상징적 숫자겠거니 별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3은 완벽과 균형의 대명사라서 인류가 수를 세기 시작한 이래 대대로 좋아해 온 숫자니까. 삼위일체 삼권분립 삼시세끼... 그러니 얼추 셋이 모이면 그중 하나쯤은 쓸 만하다,고 몽매한 제자들 말귀 알아듣게끔 공자 선생이 적당히 이른 수라 생각했다. 일종의 확률적 표현으로 말이다.
지난 후에 알았다.
스승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란 것을. 하나는 따를 점을 가진 스승, 다른 하나는 고칠 점을 보여주는 스승이란것을. 원문 바로 뒷 구절 읽기만 게을리하지 않았어도 진작에 알고 있었을 해석이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나니, 그 옳은 바를 택해 따르고 그른 바를 고쳐갈 것이다.
이래서 써머리니다이제스트니 요약본만주입해서는 전체 그림을 보기 어려운 것이다. 《논어》 서두에 떡 하니 먼저 이른게 "학이시습지 學而時習之"아닌가. 배웠다(學)고 끝내지 말고 때맞춰 계속 익혀야(習) 진정 내 것이 되는 법이다.
삼인행(三人行)으로 돌아가서,
3인의 동행자중 스승 둘이 있는데, 한쪽이 좋은 본(선자善者)이라면다른 쪽은 나쁜 본(불선자不善者)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배움이란 양쪽 모두에서 다 얻을수 있는 것이니 좋은 건 좇고 아닌 건 쫓으란 말씀. 옆사람을 타산지석으로여기고 반면교사로 삼아라.
그런데,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셋 중 둘 빼고 남는 하나는 누굴까? 무슨 그런 뻔한 질문을.좋은 스승 안 좋은 스승을 양편에두고 한가운데 중심 잡고 선 마지막 사람, 바로 나야 나 아니겠나? 석줄만에 끝난 자문자답. 그렇게 3인 방정식의해는 깔끔히 풀리고, 공자 선생이 셋을 등장시킨 저의는 화자를 중심으로 시소처럼 선과 불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생각했다.그랬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좀 더 흐르고 이런저런 경험을 좀 더 한 뒤,
그 이면에 숨은 더 깊고 무서운 진리를 깨닫게 됐다.
이게 1인칭 시점이 아니라 2인칭 시점이구나. 나만 내가 아니라 상대도 스스로를 '나'라고 생각하겠구나. 내중심으로 볼 땐 양 옆을 관찰/판단하는 중립 포지션이 나인 게 당연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상대도 역시 본인을 중심에 두고 나를 옆사람 취급할 것이다. 말인즉, 나마저도 어떠한 선생 노릇을 맡아야 한단 얘기가 된다. 등장인물 삼인방의 한 축이 나인 건 분명한데, 그게 어느 쪽 축인 지는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란 얘기다. 타산지석, 반면교사의 주어였다가 목적어로 자리 바뀌는 깨우침. 이 촌극엔 3인의 주연이 등장함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문제는, 나란 존재가 제법 따를 만한 배움의 좋은 예(善者)인지, 저러진 말아야겠다 반대의 가르침을 안기는 안 좋은 예(不善者)인지만 남는다.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건지?
룰루랄라 학생 입장일 땐 배우든 말든 어쨌거나선택의 자유는 나한테 있고, 아직 미생이기에 살짝 모자라도 맘 편한 합리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어떤 스승인지 상시 평가받는 대상이된다고 생각하면, 청소 안 해놓은 안방을 들킨 것처럼 아찔하고 모골이 송연해져 가벼이 처신할수 없다는 경각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삼인행(三人行).
삼인인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숫자 3은 반드시 3이어야 한다. 나란 존재는신처럼 고고히 홀로 떨어져독존하는 전지적 관찰자가 아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함께 같은 행로를 밟는 참여자이며 당사자이고주체자다. 갑(甲)이 을(乙)이 되고 을이 다시 갑 되는 뒤죽박죽 세태에 뒷짐 지고 관망하는 신세 좋은 병(丙)의 팔자라는 건 없다. 갑을병은 을병갑이 되고 다시 병갑을이 된다. 삼인은 나까지 껴야 비로소 삼합이 맞춰진다. 양옆을 보고 오른쪽이다 왼쪽이다 판단하는 나처럼, 상대방도 나를 평가하고 그의 기준대로 선을 가른다. 행인 1, 2, 3이 돌고 도는 3막 3장의 인생극. 심지어 삼인의 행인이 모두 다 나일지도 모르겠다. 배움직한 나(나 1), 배워선 몹쓸 나(나 2), 그리고 뭐라도 배워야 하는 나(나 3). 우리 모두는, 모두 서로에게, 셋 중 하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원을 이뤄 돌아가는 세 마리 뱀처럼, 겹치고 얽힌 상태로, 먼저도 나중도 없이매 순간 끊임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