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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Mar 12. 2023

검은 늑대 로미오

실화를 실화로 두려면


이 이야기는 실화다.


춥고 황량하고 하얀 세상에 크고 낯설고 검은 존재가 나타났다. 야생의 존재는 상식이 무색하도록 전례 없는 행동을 보였다. 경이로움은 온전히 존재가 선택한 선물이었다. 관계가 깊어져 불안한 끝을 확신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안타깝지만 결말부터 얘기해야겠다. 이런 류 이야기가 그렇듯 이 스토리 역시 새드 엔딩이다. 로미오라 불린 알래스카의 이 놀라운 야생늑대는 지혜롭고 평화롭게 개와 사람들과 7년을 공존하다 트로피 헌터의 악의적 총탄에 맞아 머리가 잘리고 가죽이 벗겨졌다. 법 당국은 살상을 뻐긴 불법 사냥꾼에게 경미한 벌금만을 부과했다. 늑대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가슴에 자책을 묻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인간의 야생에 대한 간여는 어디까지 바람직한가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의 영장류 삼총사 -침팬지의 제인 구달, 고릴라의 다이앤 포시, 오랑우탄의 비루테 갈디카스- 들이 동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을 때 기성학계는 연구대상을 인격화시키는 것은 그릇된 방법이라고 공격했다. 생떽쥐뻬리의 우화 속 사막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임에 대해 강의하면서 스스로 야생에 인위적 해석을 가미했다. 어린왕자는 장미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사실을 노란뱀에 물려 쓰러지는 순간까지 자각하지 못했다.

사진기자 케빈 카터는 독수리가 기아에 쓰러진 아이를 노리고 있는 유명한 사진을 찍었다. 수단 내전의 참상을 알린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에 실리고 퓰리처 상도 수상했지만, 인륜보다 보도를 우선시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인과관계에 논쟁은 있지만) 사진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윤리가 상황과 충돌할 때 시비가 생긴다. 자연 다큐멘터리가 포식자의 살생을 포착할 때 피식자의 관점에 선 시청자는 불편해진다. 이성의 자의적 해석과 감정의 충동적 이입이 상호 기여하며 야생의 의인화가 이루어진다.

성경은 최초의 인간 아담으로 하여금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다스리게 하였다. 그 신앙을 가지고 인류는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그것이 이제 조금씩 뒤집히고 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어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인간은 지구를 너무 속속들이 침범했고 자연과의 상호작용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반대 시각에서 이런 무시무시한 질문이 나올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두는 게 필요하다면 인간이란 종이 능력껏 자연을 통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섭리 아닌가?라고.




또 다른 생각거리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은 어느 늑대 이야기다》이다. 인간과 동물의 우정에 대한 감동.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 폭력과 부주의에 대한 반성. 일차적으로 다가오는 독후 감정이지만 그렇게 스스로의 온정에 뿌듯해하고 덮어버리기엔 이 책이 안기는 생각거리가 만만치 않다. 사연 속 늑대를 아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팬들이 몰려들고 로미오가 그들의 접근에 익숙해지면서 저자는 늑대에 대한 적대감만큼이나 거리를 두지 않는 호감 또한 위험한 감정이라고 염려한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진정 늑대를 위한 것인지는 현지 특유의 전통 그리고 현실 법규들과 얽히며 녹록지 않은 과제가 된다.

시인의 시에서 하나의 몸짓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다가와 잊히지 않을 의미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야생의 늑대에게 로미오란 이름을 붙인 순간 -문학적 의미마저 부여된- 그것은 선의와 상관없이 잘못된 길들여짐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닌 이 책은 생각하게 만든다. 상대는 야생이므로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해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야생에 반하는 것일지도. 이야기엔 로미오 외에도 많은 다양한 동물들의 죽음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로미오의 죽음을 더 특별하고 유일한 것으로 의식하게 된다. 늑대에게 로미오란 이름을 붙여준 당사자인 저자가 셰익스피어 작품 속 줄리엣의 대사를 소개하는 대목은 김춘수 시인의 《꽃》과 정반대의 심상으로 낯설고 어려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름이 다 무엇인가요? 우리가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해도 향기는 여전히 달콤할 텐데.”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님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빠져들어 읽게 되는 수기다. 실시간으로 현장에 함께 서있는 듯 느껴지는 묘사가 홀로그램처럼 생생한 이미지들을 그려낸다. 저자는 작가이면서 사진가이기도 하다. 긴 시간에 걸쳐 직접 찍은 사진들이 경이로움과 함께 감동을 준다. 광대한 알래스카 설원 위에 늠름히 버티고 선 거대한 검은 늑대는 웬만큼 크다는 견종보다도 머리 한두 개가 더 크다.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시튼 동물기 -파브르 곤충기와 양대 산맥을 이뤘던- 의 시그니처 캐릭터 늑대왕 로보가 떠오른다. 로보의 리더십과 순애보, 지혜와 달관의 최후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은 로미오는 인간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단지 감상적인 추억으로 글을 마치지 않고 늑대가 뜻하지 않게 가져다준 지역사회의 교류와 유대감에까지 의미를 확장한다. 생각보다 덜 알려진 책인 듯하여 더 많은 독자의 서재에 꽂혀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추천하며 몇 구절을 소개한다.


"이것은 빛과 어둠, 희망과 슬픔, 공포와 사랑, 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마법이 뒤얽힌 이야기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나는 녀석에게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었다. 애정 어린 마음을 잔인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할 때 가슴은 더 찢어진다."

"우리는 모든 기적이 그렇듯 사라져 버린 것을 애통해했고, 각자가 할 수 있었던 일과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에 대해, 그때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흘려버린 작은 선택을 애통해했다."

"나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니고, 그 검은 늑대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점점 공허해지는 세상을 표류하는 우리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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