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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Aug 20. 2023

루프양자중력 part 2. 시간에 대하여

카를로 로벨리의 저술을 바탕으로


과학은 무조건 어렵다는 선입견이 팽배하고 개중 어렵다는 게 물리학인데 거기에 상대성이론 심지어 양자역학에 들어서면 그 이름만으로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환자들이 속출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게 아예 없진 않아도 제대로 안다기엔 좀처럼 자신감이 서질 않는다. 얼추 이해했나 싶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뒤죽박죽 여간해서 개념 정리가 쉽지 않은 동네. 그런데 ‘루프양자중력’이라니,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안드로메다 외계어인가? 낫 놓고 기역자는 낫이라도 있지, 분명히 한글 자모인데 개념 이해는 고사하고 따라 읽기조차 버겁다. 한 입 가득 모래 씹는 것처럼 뻑뻑한, 우주의 근원에 대한 최첨단 해석. 루프양자중력이론의 공간에 대한 설명을 다룬 지난 글에 이어 이 글에서는 시간에 대해 수박 겉핥기를 해보겠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갈릴레이는 피사의 성당에서 커다란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 통찰을 얻었다고 한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과학자는 샹들리에와 자신의 맥박을 같이 재 보고 몹시 흥분했다. 샹들리에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맥박 수가 똑같았던 것이다. 심지어 샹들리에의 진동이 느려지고 진폭이 줄어들어도 맥박 수는 여전히 같았다. 이로부터 갈릴레이는 샹들리에의 진동 시간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맥박은 어떻게 잴까? 시계를 이용해 잰다. 그럼 시계의 1분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할까? 일정하게 뛰는 맥박을 기준으로 한다..(?) 예전엔 진자가 시계였으니 그렇다면 진자의 운동을 맥박으로 재고 다시 그 맥박은 진자의 운동으로 잰다는 소리가 된다. 이 무슨 순환논리?


카를로 로벨리는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실제로 측정하는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꼬집는다. 우리가 측정하는 것은 샹들리에의 진동이나 맥박 같은 단순한 물리적 변수들(A, B..)이다. 그리고 그 변수들을 다른 변수들과 비교하는 함수(f(A,B)..)를 만든다. 즉, 우리가 잴 수 있는 것은 맥박이 몇 번 뛸 때 진자가 한 번 흔들리는지, 진자가 몇 번 흔들릴 때 시곗바늘이 한 번 째깍거리는지 같은, 변수 사이의 관계를 말해주는 방정식일 뿐 독립된 각 사건의 시간을 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요컨대 시간의 존재 역시 하나의 가정이라는 것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엄청난 관점의 도약에 이른다. 흐르는 시간이라는 생각은 오직 거시적 규모에서만 유효한 근사치일 뿐, 근본적인 수준에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우리는 세계를 대충 지각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시간에 따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사물들은 오직 서로에 관해서만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에 대하여


우주에는 ‘위’나 ‘아래’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주에서 벌어지는 두 사건 사이에도 ‘전’과 ‘후’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후를 구분하는 기본 발상은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열역학의 용어를 쓰자면 엔트로피 증가의 개념이다. 아래는 ‘물체가 낙하하는 방향’이고, 시간은 ‘열이 식는 방향’인 셈이다. 결국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이 있을 때만 발생한다. 그렇다면 현재는?


‘현재’가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을 현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반대로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현재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지금’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지금’을 ‘여기’와 비교해서 설명해 보자. ‘여기’는 말하는 사람이 서있는 장소다.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이 있는 곳을 여기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다른 두 장소가 하나의 같은 장소가 되는 건 아니다. 즉, 지시명사인 ‘여기’는 언급된 위치에 따라서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말을 한 사람의 순간에만 한정된다.


로벨리 교수가 강연에서 늘 소개하는 비유적(이면서 동시에 사실)인 설명이 있다. 시간은 중력이 강할수록 느리게 간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에서 입증한 물리법칙이다. 중력이 강한 외계행성을 탐사하고 돌아와 보니 우주선에 머물렀던 사람이 폭삭 늙어 있더라는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 속 장면으로도 익숙한 개념이다. 이 법칙에 의하면 땅바닥에 붙어있는 발보다 1~2m 허공 위에 있는 머리의 시간이 더 빠르다. 너무 미세한 차이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해수면과 가까운 땅에서보다 해발 고도가 높은 산꼭대기에서 시간은 더 빠르게 간다. 더 확장해서 우주로 나가면 어떨까? 영화 속 밀러 행성에서의 몇 시간 동안 우주에 떠있던 인듀어런스 호에서는 23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있었다. 그렇다면, 아주 멀고 멀어서 빛의 속도로도 몇만 광년을 가야 하는 우주 저 끝 다른 은하는 어떨까? 그곳의 시간도 우리 지구에서의 시간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게 빛이라지만 그 빛도 초속 30만 km라는 정해진 속도를 넘지 못한다. 아무리 별빛이 광속으로 오더라도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은 현재가 아니라 그들의 과거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별을 보고 있지만 이미 그 별은 진작에 죽어 없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금과 그 별의 지금은 과연 같은 지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금이란 것을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어떤 한 포인트로 특정할 수 있는 걸까? 이 지점에서 우리가 떨쳐낼 것은 현재를 순간으로 여기는 고정관념이다. 현재는 ‘순간’이 아니라 ‘간격’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시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간격이다. 위에 거론한 우주적 거리의 예로 돌아가 보자. 지구에서 롸잇나우라고 생각한 순간, 그 간격은 화성에서는 15분, 가장 가까운 항성인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 b에서는 8년, 저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에서는 수백만 년에 이른다. ‘지금'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이 상황이 다소 기괴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무 충격에 빠지진 말자. 평생 이 땅 위에 발 붙이고 산 우리 인간의 한계로 인식하는 시간은 그럴 수밖에 없다. 특수상대성이론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주관적인’ 시간의 개념이다. 이전 글에 소개한 혁파된 공간의 개념처럼 시간 역시 어떤 절대적인 틀이 아니다. 시간은 각 물체의 움직임에 종속되어 있으며 따라서 각각의 물체에 따라 고유하게 나타난다. 지구에는 지구의 시간이 있고 안드로메다에는 안드로메다의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시간을 보편적인 방식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우주가 하나의 현재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며, 절대불변하는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다. 시간에 마치 순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시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특수한 양상일 뿐 보편적인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천 년 간 인류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돌고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절대적 시간이 우주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믿는 것은 우주 귀퉁이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인간의 특별하고도 제한적인 시각일 뿐이라고 로벨리 교수는 말한다. 책 속에 언급된 다음의 단적인 문장이 인상 깊게 박힌다.   


현재라는 것은 지구의 평평함과 비슷합니다. 착각이죠.



지난 글과 이 글 

두 차례에 걸쳐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말하는 ‘공간’과 ‘시간’ 개념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우리의 직관적인 인식을 전복하다시피 하는 파격적 개념에 정신이 어질 하기도 하다. 최초에 글을 시작하면서 말한 대로 내 실생활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어려운 이론이지만 그래도 이런 근원적 의문을 품어보는 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이다. 비록 수박 겉핥기였지만 필자 역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글을 마치기 전에 사족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카를로 로벨리의 책이 좋은 이유는 과학이론을 넘는 인생을 들여다보는 인사이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족이 아니라 그게 본질일 지도 모르겠다. 경이로운 우주의 신비를 통찰하는 잠언과도 같은 문장이 곳곳에서 지성을 자극하는 과학서이자 철학서. 덕분에 진리의 바닷가에서 작은 조약돌을 줍던 뉴턴의 마음을 모래알 한 알만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글: 루프양자중력 part 1. 공간에 대하여

https://brunch.co.kr/@ez1pd/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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