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Feb 01. 2022

그때 우리 학교는

(스포일러 제로)

비보다 강시였다. 삐걱대는 각기춤보다 스카이콩콩이 대세였다. 팝핀?팝핑?은 못 들어봤어도 호피티 타는 건 확실히 얼라들이었다. 벤조다이아제핀 진정제를 주사하는 과학선생은 없었지만 대신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마빡에 노란 부적을 포스트잇하는 강시선생이 학급마다 넘쳐났다. 자칭 영환도사들과 홍금보들 뒤로 싸랑해요 밀키스 주윤발들이 성냥개비 씹고 쌍손가락질 해대며 복도를 쿵쾅댔다. (그게 나였다고 말씀은 안 드리겠다만 하여튼) 호환마마보다 빨간 비디오가 무서운 시대였다.

'설' 이라는 한 글자를 사이에 두고 '헌'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다. 사람이 만든 시간관념에 23:59와 00:00이 다를 게 뭐가 있겠냐만, 누군간 희망과 다짐을 얘기하고 누군간 잊을 것과 제대로 이별하며 제각각 의미부여를 시도한다. 21년과 22년이 갈리고 1월과 2월이 넘어가는 딱 그 틈바구니에 우연히 넷플릭스를 틀었다가 또 난리라는 K-콘텐츠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았다. 불현듯 그때 우리 학교는 어땠더라 K-메모리에 잠겼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드라마 내용과 아무 관계도 없다. 그냥 설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리와인드 버튼을 눌러 벤자민 버튼이 되어본다. 그러니까 독자분들도 스포일 걱정일랑 마시고 혹 공감 아이템이 나오면 스톱 버튼을 눌러 잠시 그때의 색채와 소음과 내음을 느껴보셔도 좋겠다. 세피아 톤 확실하도록 최소 20년은 되돌릴 예정이다. 90, 80, 70년대.. 물론 스톱 타이밍은 각자 조금씩 다르시겠지만 말이다.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겠죠?

마이마이 건전지 닳는 게 아까워
별밤 녹음한 선경 스마트 테이프
볼펜에 끼워 돌리는 마음.

동네 사진관에
코닥필름 현상 맡기고
일주일 꼬박 기다리는 심정.

여기요 저기요 길 물어보면서
지도 위아래로 뒤집어보느라
자꾸 클러치 밟는 기분.

리포트 제출시간 쫓기다
도트 프린터 용지 절취선 잘못 찢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내 본 경험.

혹시, 있나요?

이때 선경이 지금 SK


입학도 전에 OT에서 오바이트부터 배우고. 시험 때면 과방에서 족보부터 복사하고. 대된 후 첫 사업은 이대 숙대 무용과에 과팅 제안. 월요일엔 학보 부쳐 타대학 친구들에게 우편 안부. 따로 약속 안 잡아도 학교 앞 서점 게시판에 웬만한 동아리 뒤풀이 장소는 다 적혀 있었지.


모이는 건 청량리역, 내리는 건 대성리역. 엠티 가는 기차 안에선 통기타 먼저 잡는 애가 기선 제압. 김건모 핑계로 흥 띄워놓으면 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로 혼자 분위기 잡는 애 꼭 존재.

자뎅, 퐁세, 친구 알바는 커피전문점에서 하는데 소개팅 메뉴는 이쑤시개 우산 꽂힌 프라페.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있던 보디가드는 삐삐 메시지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비싼 값을 했지. 누군가 1010235 말없이 숫자만 남기면 혹시 그앨까 설레는 맘에 사서함 인사말을 바꿔놨었어.


스타크래프트 처음 나왔을 때 대단했잖아? 얼라이 걸고 2시 방향 고고.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오락으로 돈 버는 직업이 생길 줄이야. 어쨌든 나우누리 쪽팅 한창 달아오른 중에 마루에서 수화기 든 엄마 때문에 모뎀 끊길 걱정은 PC방 생기면서 없어졌잖아. 그래, 누구 찾는데 PC방에 없으면 십중팔구 당구장이었어. 노래방, 비디오방도 만원이었지만 거긴 동성끼리 갈 곳은 못 되잖아? 다마 30으로 시작해서 맛세이 가능해질 때까지 시켜먹은 짜장면 값만 한 학기 등록금도 넘을 거야. 군팔이 군디스로 바뀌고 양담배도 허용됐지만 마일드세븐 불매운동은 결국 실패였던 듯.


씨티폰 들고 야타 하는 압구정 오렌지족이니 뭐니 X세대 때문에 세상 말세라더니, 밀레니엄 버그 지나고도 호황이었던 인터넷 채팅 사이트가 하늘사랑이었던가 아이러브스쿨이었던가? 여의도가 공원이 아니라 광장이던 시대, 최루탄 화염병 백골단 프락치 닭장차를 아는 이에게 낭만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모래시계 최민수 전에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이 있었고, 초록눈알 M이 되기 전 심은하는 마지막 승부를 걸게 하는 청순 다슬이였던 건 분명해.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영화!!"

2021년 윤여정 씨가 오스카를 쥐기까지 2017년 베를린 김민희, 2007년 칸 전도연, 1987년 베니스 강수연 배우가 있었음을. 그 영화 제목은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였음을. HOT 젝스키스 지오디로 넘어가기 위해 룰라 잼 노이즈 서태지를 지나왔음을. 유엔 플투 유리상자 녹색지대 수와진 해바라기 감미로운 듀엣의 계보를 현이와 덕이까지 되짚으면 너무 멀리 간 걸까? 내 돈 주고 처음 산 이문세 3집 B면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녀>, <그대와 영원히>뿐 아니라 <어허야 둥기둥기> 건전가요라는 게 반드시 들어갔어야 했음을.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noevir007&logNo=222586520246&categoryNo=32&proxyRefer


이어령 선생의 굴렁쇠 소년이 88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을 가로지를 때, 우리 집엔 88권짜리 에이브 전집이 있었어. <아이들만의 도시>, <룰루와 끼끼>, <작은 바이킹> 정도 빼곤 청소년 문고치고는 좀 무거운 새드엔딩이 많았던 기억야. 마음이 가벼우려면 보물섬이나 소년중앙 같은 만화책을 봤어야지. 이현세는 설까치, 이상무는 독고탁, 이향원 화백은.. 부루마불? 마음을 애매모호하게 휘젓던 간행물도 빼놓을 순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질풍노도의 주변 탓일 . 선데이서울, 핫윈드, 티비가이드..가 아니라 뭐더라.. 맞다 건강다이제스트! 생각해보면 정말 건강 걱정해주는 잡지였는데 그땐 뭐가 그렇게 맥심스러웠는지. 그보다 더 의문인 건 엄마 몰래 두근두근 숨어 읽었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영문학 명작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충격. 그렇게 대놓고 야한 책이?


<에이리언 2>와 <뽕 2>가
동시 상영하던 시절.

회수권 10장을
황금비율로 접어
11장 만들던 시절.

집전화번호 예닐곱 개쯤은
가뿐히 외우던 시절.

그 시절들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까?

잘했다는 얘긴 아니다


이곳저곳 제멋대로 움직이던 타임머신이 드디어 한 교실 위에 멈춰 서고,


주번인 날엔 칠판지우개를 털고, 우유급식을 받아오고, 신문지를 걷거나, 채변봉투를 수거했다. 나라에선 걸핏하면 라면봉지에 쌀을 모아 오라 시키고, 평화의 댐을 짓는답시고 성금을 거둬갔다. 한 달에 한 번 민방위 훈련날엔 책걸상 아래 숨어 들어가 왁스칠 반들반들한 나뭇 바닥 위에서 공기놀이 아니면 우표 교환을 했다. 그땐 무슨 대통령 순방과 방한이 그리 많았는지, 기념우표를 시트째 사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우체국 앞에 줄을 섰다. 크리스마스 씰은 아예 학교에서 대놓고 팔았다. 애들끼리 자율적으로 뺏고 뺏길 수 있었던 건 밀가루에 가까운 분홍 소세지 반찬이랑 지우개 따위였다. 점보 지우개 하나로 급우들 지우개를 다 따먹은 앞자리 녀석에게 한 최고의 복수는 내 소피 마르소 책받침으로 녀석의 피비 케이츠 책받침을 깬 사건이었다. 분을 못 참은 녀석은 다음날 브룩 쉴즈 책받침으로 재결투를 신청해왔다.


브룩, 소피, 피비. 낼모레 환갑 누님들.


50원짜리 오락실에 100원 오락기가 등장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하긴 10원 동전에 테이프 둘러감아 100원으로 둔갑시키는 치트키는 이미 상용화된 지 오래였다. AAAAA라는 불성실한 이름의 성명불상자가 늘상 차지하고 있는 돈킹콩 1등 기록에 이름 한 번 올려보려고 몇 날 아침을 오락실로 등교하다가 엄마한테 딱 걸려 뒤지게 혼났다. 그래선가 나는 또래보다 빨리 오락실을 끊었다. 내 기억 속 마지막 게임은 보글보글(아님 바블바블)이다. 배경음악이 지금도 들린다. 뭣? 정식 명칭은 버블보블(Bubble Bobble)이란다. 30년 만에 첨 알았다..

끝판왕이 있던 게 99층이었나 100층이었나


오락실 말고도 놀고 먹을 건 많았다. 오징어 게임에 무궁화 꽃만 핀 건 당연히 아녔다. 삼팔선 돈까스 다방구 얼음땡 탈출 짬뽕 와리가리 일이삼사 아는 사람? 땅따먹기 말뚝박기 제기차기, 드리는 건지 들이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제기 드리다가 짓궂은 마음 발동하면 무찌르자공산당몇천만이냐 애꿎은 옆 여자애들 고무줄 잘라먹고 실내화 날아올 때까지 신나게 날랐다. 책상에 금 긋고 넘어온다고 장난치짝꿍네 엄마가 교실에까지 찾아와서 선생님께 삿대질을  할 때 난 왠지 걔 말고 죄 없는 선생님이(그래 봐야 갓 교대 졸업하고 20대 초반이었을) 불쌍했다. 요즘 같아선 학폭이다 뭐다렸으려나 그래도 하굣길에 쌍쌍바는 사이좋게 나눠먹었던 걸 보면 서로 은근 좋아했던갑다. 아니다 서주 아이스주였나? 쭈쭈바 아폴로 쫀득이. 잉어는 안 뽑히고 늘 거북선만 뽑기(달고나 아님). 그 문방구에 삐까번쩍 OB 베어스 박철순과 MBC 청룡 김재박 유광 점퍼가 처음 깔리던 날을 잊지 못한다. 부산에 한번 가본 적도 없으면서 롯데 김용희 선수가 좋았던 나는 저런 쌈박한 아이템은 안 만들고 껌만 파는 롯데라는 회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더랬다.

떠오르는 대로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프로야구 원년도까지 거슬러왔다. 학교 앞에서 불량식품만 팔았을까, 병아리도 팔던 날들이다. 그 병아리 중닭 될 때까지 키웠는데 새벽마다 꼬끼오 홰를 친다고 반상회에서 항의가 들어와 어머니가 난감해하셨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니 시골집에 갖다 줬다고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대셨는데, 그날 저녁 식탁에 백숙이 올라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반려견 반려묘? 반려란 말 자체가 존재했나 싶은 시절이었지만 도시에서도 자연은 멀지 않았다. 고추잠자리 된장잠자리 방아깨비 무당벌레. 뒷산 웅덩이엔 게아재비, 물장군과 함께 우무 푸딩 같은 개구리알이 지천에 깔려있었다. 테레비를 틀고 로터리를 돌려 브라운관을 보던 시절. 티비 다이얼에 쓰여있던 VHF, UHF가 뭔 뜻인지는 몰라도 AFKN이 2번에서 나온다는 건 구구단보다 빨리 알았던 시절.

요술공주 세리 밍키 그담엔 새롬이였나? 모래요정은 바람돌이고 호호는 아줌마 성함이었지. 미래소년은 코난, 태양소년은 에스테반. 개구리 왕눈이 곁엔 아로미가 있었고 파트라슈 네로 옆엔 아로아가 있었다. 대마왕 손아귀에 니나를 구해내자던 건 이상한 나라의 폴이었나 삐삐였나?

이제 정말 줄여야겠다.




장롱 위에 어머니가 고이 모셔두신 슬라이드 영사기. 헝겊 주머니에 콩 넣어 오재미 박아주시던 재봉틀. 막냇동생 젖병과 기저귀를 솥에 삶고, 전지분유 깡통을 몰래 퍼먹고, 약탕기달여 삼베 보자기로 짜내한약내까지. 필름은 흑백이어도 바로 엊그제 보고 듣고 맡은 듯한 것은 오래된 기억일수록 해마 깊숙이 각인됐기 때문이겠지. 섣달그믐 까치설에 재미 삼아 되돌린 옛 추억치고는 제법 멀리도 갔다.

눈 내리는 설이다. 낯익음을 보내고 낯섦을  아직은 낯 설익은 기분으로, 밤하늘 내리는 설(雪)을 바라보며 이제 새날을 청하련다.


Happy New Here!



매거진의 이전글 망각 능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