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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Feb 04. 2022

사그라다 파밀리아, 나는 너부터 찾는다

@바르셀로나, 스페인


어디를 여행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올 땐

난 본능적으로 너부터 찾기 시작해.

비행기를 타면 특히 그렇지.

파리 상공에서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에펠탑을 먼저 찾고, 

맨해튼 상공에서 복잡한 심정으로1WTC를 젤 먼저 찾는 것처럼,

난 너한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제일 먼저 니 안부부터 확인해.



비행기에선 웬만하면

오른쪽 창가에 앉으려고 해.

왜인지 넌 알지?

엘 프랏에 내릴 땐 항상

니 왼쪽에서 바다 위를 날거든.

하긴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네가 가장 키가 크니까

뭐 어떻게든 티가 나겠지만 말이야.  


가우디 씨가 이렇게 말했지.


"저 첨탑 꼭대기를 봐! 마치 이 땅과 천국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 같지 않아?
바다로 나갔던 배들이 항구로 돌아오면서 제일 먼저 보게 될 게
저 반짝이는 환영의 모자이크라고 생각해봐, 정말 감동적이잖아!"


맞아.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세상에서 가장 성스런 등대가

너라니 참 멋진 일이야!




@Nativity Façade, La Sagrada Familia


바르셀로나란 도시를 세상 가장 신비한 도시로 마음속 괄호 안에 각인시킨 건 처음부터 기괴함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사진 한 장이었다. 스머프 마을에 나타난 가가멜처럼 사진 속 건축물은 주변과는 전혀 어울릴 생각이 없다는 듯 독특한 풍채와 매머드한 덩치를 자랑했다. 거대한 죽순 같기도 하고 수천 배 뻥튀기한 옥수수 같기도 한, 불시착했다가 채 수리를 못 끝내 버려진 UFO 날개 같은 이상한 탑들이 하늘 높이 삐죽삐죽 섰고, 벽면엔 간첩 난수표 뺨칠 알아먹을 수 없는 요상한 문구들이 가득했다. 짓기 시작한 지 백 년 하고도 수십 년이 더 지났다는데 아직도 완공은커녕 일부러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거라는 전설의 프로필까지. 이상한 죽순 탑들과 그 사이에 버티고 선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타워크레인들은 마치 저그 본진의 해처리 건설 현장을 보고 있는 듯한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당시의 나를 사로잡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스페인어를 배우기 전까진 이름조차 괴상했던 성당. 파리 노트르담에서 문학적 장중함을,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권력 투쟁의 냄새를 맡았다면 이 괴이한 성당은 인간의 무모한 광신도전실험 현장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웬만한 여행지에 차이고 밟히는 게 성당이라지만 이 성당은 좀 달랐다. 의도적으로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무언가 불경한 불가사의였다. 끝도 내지 못할 이 의문의 바벨탑을 계획한 사람은 누구이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꼭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직접 와보고서야 알았다. 완전히 잘못된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인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자연에 가까운 것이었는지를. 무모한 설계자가 얼마나 신을 경외하고 신의 건축법에 귀의한 이였는지를. 그리하여 그 어떤 성당보다도 성스럽고 그 어떤 교회보다도 겸허한, 진짜 성소를 짓고 싶어 했다는 것을.




완공 상상도


(누구나 알지만 전부는 모르는) 성가정 성당의 비밀


-1. 2026년까지 공사를 끝낼 거라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스페인어로'성스러운 가족'이라는 뜻이다. 이 성당엔 총 3개의 파사드, 쉽게 말해 문이 있다. 동쪽에 <탄생> 서쪽에 <수난> 그리고 남쪽에 <영광>.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인생 풀스토리를 조각으로 텔링 하는 건데, 지금까지 <탄생>과 <수난> 둘만 완성됐고 <영광> 파사드는 아직 건축 중이다.


뾰족하게 솟은 거대 죽순 탑은 모두 18개이다. 다 못 본 것 같다면 그럴 수밖에. 아직 다 못 지었으니까. 12 사도와 4 복음서 저자(마태 마가 누가 요한) 더하기 성모 마리아와 예수, 18개 첨탑 중에 가장 높을 건 정중앙에 떡 하니 설 예수 탑이다. 완공 상상도를 보면 살짝 움찔하게 되는데, 지금 있는 것도 규모가 놀라운데 그림대로라면 몇 배는 더 큰 부분들이 아직도 한참 남아있다. 현재 있는 건 양 옆문과 몸통 일부에 불과하니 정문에 중앙탑까지 다 지어놓으면 정말 엄청날 예정이다. 문제는, 기간과 비용 (그리고 뜻하지 않은 코로나)이다.  


가장 높은 중앙탑의 높이는 170m가 될 예정이다. 이유는,


 "인간의 창조물이 신의 창조물보다 높을 순 없소!"


가우디의 신실한 신심으로 해발 171m인 서쪽의 몬주익 언덕보다 딱 1m 낮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 1852-1926).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물론, 구엘 공원부터 까사 밀라까지 바르셀로나 관광객 유치의 일등 공신. 정작 본인은 생전에 그런 의도를 가졌을지 의문이지만,


"창조는 신이 하고 인간은 오직 발견하는 겁니다."


아마존 밀림 한가운데 같은 성당 안 희한한 골조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다시 정교함에 탄복하고 나면 와, 이 사람 진짜 자연 숭상을 넘어 탐닉한 사람이었구나 의심의 여지가 없어진다.  


1882년부터 시작된 건축비용은 순전히 기부금만으로 충당돼 왔다. 규모도 규모지만 돈도 부족하니까 140년이 넘게 걸리고 있는 거겠지. 공사가 너무 더딘 거 아니냔 질문에 생전의 가우디는 이리 성스런 답을 했단다.


"내 고객은 급하지 않으세요."


몇년 전만 해도 가우디 사후 딱 100주년인 2026년까지는 완공한다고 큰소리를 치던 지방 정부였는데, 코로나 이후로 그마저도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다. 그래, 급하게 맘먹지 말자. 착공 200주년 꽉꽉 채워 2082년에는 설마 끝나지 않겠나. 


성당 옆에 자그마한 박물관이 붙어있는데,  1882년부터 지금까지 건축과정과 원리를 볼 수 있는 사진과 모형들이 전시돼 있다. 기가 막힌 무게중심 잡기. 다 자연에서 얻은 힌트.




-2. 모든 게 다 가우디 작품일까?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면 로버트 랭던 교수가 어렵게 암호를 푸는 크립텍스란 게 나온다. A부터 Z까지 알파벳 다섯 글자로 만든 비밀 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도 이런 추리소설 같은 퍼즐이 곳곳에 숨어있다.  


기둥에 묶여 채찍질을 당하는 그리스도의 조각이 있는 <수난> 파사드에 가면 빙고 게임 그려놓은 것처럼 숫자들이 가득한 네모난 표를 발견할 수 있다. 루빅스 큐브처럼도, 마방진처럼도 생겼는데 언뜻 보기엔 의미 없이 무작위로 적힌 숫자들 같지만 그럴 성당이 아니다.  



가로 첫 줄의 숫자들을 더하면,

          1+14+14+4 = 33

세로로 첫 줄을 더하면,

          1+11+8+13 = 33

그렇다면 대각선은?

          1+7+10+15 = 33


이 마방진적힌 숫자들을 4개씩 가로, 세로, 대각선 어떻게 더해도 항상 그 합은 33이 나오게 만들었다. 왜 33?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때 나이. 여기에 하나 더.  


숫자들을 자세히 보면 유독 10과 14만 두 번씩 등장한다. 그건 왜 그럴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로마 병정들이 조롱하는 의미로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뜻의 라틴어 'INRI'라는 팻말을 같이 달아놨었다. 이 I. N. R. I 라는 네 알파벳을 순서에 따라 숫자로 치환한 후 다 더하면 48이 된다. 이 상징빼놓지 않기 위해 10과 14를 두 번씩 반복해 10+10+14+14 = 48이 나오게 만든 거다. 즉 하나의 표에 두 가지 다른 상징을 동시에 가둬놓은 것. 가우디도 참, 퍼즐 좋아하는 문제적 남자였다...가 아니다??


이 마방진이 어느 문에 있다고 했지? <수난> 파사드. 파사드는 차례로 <탄생> <수난> 그리고 <영광> 총 3개. 순서대로 착공했으니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건 첫 번째 <탄생>다. 그럼 <수난> 쪽은? 담당자는 주제프 마리아 수비락스(Josep Maria Subirachs)라는 까탈루냐 출신 조각가다. 왜 가우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게 됐을까? 성당 공사가 잡음 없이 꾸준히 진행돼온 것만은 아니다. 스페인 내전처럼 공사가 아예 중단된 시기도 있었지만, 철근 콘크리트까지 써가면서 가우디의 오리지널 디자인과 다른 현대식 형태로 꼭 완성시킬 필요가 있겠냐며 계속 짓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다. 밀로에서 발견된 2천 년 전 비너스 조각이 두 팔이 떨어져 있다고 마네킹 팔이라도 갖다 붙이자는 거랑 뭐가 다르냐며, 가우디의 유지를 받들어 완공시키자는 의견과 예술적 테러 대신 그냥 미완성 상태로 두자는 찬반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고 한다.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1987년 건축 책임을 맡게 된 사람이 수비락스였고, 그런 연유로 백 년 세월의 때가 묻은 아르누보 스타일 <탄생> 사이드와 전혀 다른 느낌의 직선이 강조된 현대 표현주의 스타일 <수난> 파사드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예술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 같은 것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름에 예수의 부모 이름 요셉이랑 마리아가 다 들어가 있는 이 건축가도 독특한 건 매한가지였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 180도로 따라다니는 조각 작품이 그한 특징이다. <수난> 문 옆에 수의에 찍힌 그리스도의 얼굴을 오목거울처럼 조각한 부조가 있는데 그 시선이 보는 사람의 눈을 빤히 쫓아다닌다. 비슷한 작품을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랏 수도원 앞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 공원에 가면 <하늘 기둥>이라는 거대한 돌덩이가 있다. 88 올림픽 때 기념으로 이 아저씨가 갖다 놓은 작품이다. (이 추상적인 돌덩이엔 얼굴이 없다.)




-사족. 가우디 팬 강백호.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가우디의 광팬이다. 2011년에 바르셀로나를 방문해서 가우디가 태어난 마을부터 그가 동경한 자연조각작품 몬세랏 구석구석까지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를 해서 만화 에세이를 그렸다. 일본인 특유의 집념이 엿보이는 책인데 우리말로도 번역돼있다. 제목의 페피따(pepita)는'과일 씨앗'이라는 뜻인데 가우디의 창조의 씨앗을 자신도 발견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거라 생각한다. 익숙한 슬램덩크 그림체로 만화를 보듯 바르셀로나를 만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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