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에 네덜란드 출신 메르카토르는 당시 유럽 탐험가들과 선원들의 항해에 도움을 주고자 지도를 그렸다. 이 지도의 센터는 유럽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상한 축척이 쓰인 바람에 면적의 왜곡이 극심해서 캐나다 옆에 하얀색으로 그려진 그린란드의 크기가 아프리카 대륙과 맞먹어 보인다. 사실은 아프리카가 14배 더 큰 데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눈엔 이 지도 모양이 전혀 요상하지 않고 아주 낯익다. 학교에서 사회과부도 - 요즘도 이 책이 있는가는 모르겠다 들여다보기 재밌는 책인데 - 에서 익히 보고 세뇌받은 지도이기 때문이다.
갈-피터 도법
요 녀석은 좀 달라 보인다. 갈-피터 투영법에 의한 이 지도는 모든 대륙을 실제 크기로 표시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그린란드는 확실히 작아졌고 유럽은 훨씬 더 위쪽으로 찌그러 붙었다. 메르카토르와 갈-피터 두 지도의 차이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단지 다른 투영법을 이용해 모양이 달라진 것뿐일까?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인식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교과서에서 가르쳐온 메르카토르 도법은 제3세계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과 무시를 조장하고 유럽과 서구 위주의 가치관을 무의식 속에 심어 놓았다. 물론 갈-피터 투영법도 완벽한 방법은 못 된다. 크기 맞추는 걸 신경 쓰다 보니 거리가 틀려지는 부작용이 따랐다. 사실 지구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지도법은 각각의 허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National Geographic Society가 표준으로 선택하고 있는 지도는 빙켈 트리펠(Winkel Tripel) 지도다. 그나마 왜곡이 가장 덜하기 때문이다.
빙켈 트리펠 도법
다른 생각도 한번 해보자. 지구는 둥글다. 둥근 구형의 3차원 지구를 평면의 2차원 종이에 그려 넣자니 당연히 한계가 생긴다. 구의 표면을 잘라 평면에 펼쳐놓을 때 자르는 선이 어디냐에 따라 지도의 중심이 유럽일 수도 아시아일 수도 있다. 남과 북의 위치는 또 어떤가? 왜 꼭 북반구가 위쪽에 있어야 하는지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 있으신지? 지구는 둥근데 북이나 남 같은 방위는 인간들이 편의상 정의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 그게 반드시 위나 아래를 뜻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드넓은 우주에서 작고 동그란 구슬같은 지구를 볼 때 위아래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위아래는 엄밀히 말하면 지구 겉표면과 내부 중심 사이의 문제일 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억울하겠지만 대다수의 지구인들은 이 세상을 북에서 남의 순서로 본다. 위아래가뒤집어진아래 지도가 몹시 어색하다면 무의식 속의 우리 세상이 이미 그렇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가 업이고 어디가 다운인가
'무엇을''어떻게' 본다는 건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의 사고방식이 실제의 물리적인 성질을 거꾸로 통제하기도 한다.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아파진다. 신경이 통증을 창조하기도 한다. 미적 기준은 더 상대적이다.사랑하는 이의 뒤틀린 새끼발톱은 천사의 입술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정보민주화,디지털 민주화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유럽 제국주의 대항해시대가 언제 적 얘긴데 아직도 도법 운운하냐.. 고 생각하신다면 한번 체크해보시면 어떨는지? 21세기 디지털 항해 내비게이터인구글맵에서 여전히 그린란드가 아프리카보다 크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