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를 틔우기

<여러 보타니카 음악들>을 듣고 발아하며

by 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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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틔우기 – 자연처럼 작동하는 음악, 보타니카에 대하여


보타니카(Botanica)는 단순히 자연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을 묘사하거나 감정적으로 포장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의 작동 원리를 사운드 구조로 구현하는 감각적 실천이다. 보타니카는 자연을 다룬다기보다, 자연처럼 구성되고 작동하는 음악이다. 이때 음악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감각의 조율 방식이며, 더 나아가 존재를 배치하는 환경 그 자체가 된다.


이 음악은 특정한 분위기나 서사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멜로디, 하모니, 리듬과 같은 전통적 작곡 요소는 중심에서 밀려나고, 질감, 반복, 층위, 밀도, 여백이 주요 구성 단위가 된다. 음악은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자라나는 유기체처럼 증식하고 뒤틀리며 흘러간다. 이는 곡이 특정한 기승전결 구조를 가지지 않고, 감각적으로 퍼지고, 침투하고, 사라지는 과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안에서 음악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감각 환경에 놓이게 된다.


보타니카는 기술적 기반 위에서 구성된다. 대부분의 작업은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 위에서 진행되며, 잘게 흩어진 음을 통해 사운드는 더 이상 선형적이지 않은 입자적 단위로 나뉘고 재결합된다. 글리치, 필드 레코딩, 미세한 노이즈, 다층적 잔향 같은 비정형 음향 요소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각의 전환을 유도하는 조작 장치다. 인간이 인지하기 어려운 속도의 반복, 소리 입자 간의 간섭, 생명과 무생물의 경계에 놓인 질감은 이 음악이 다루는 시간성과 물질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자연은 더 이상 아름다움의 주제가 아니라, 작동 원리이자 감각적 모델이 된다.


결과적으로 보타니카는 감정을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청취자를 감각적 리듬 속으로 포섭하고, 하나의 생태적 질서로 재배열하는 체계다. 청취자는 감정을 분별하는 주체라기보다, 텍스처의 흐름 속에서 배치되는 하나의 감각적 위치점이 된다. 이 음악은 소통의 언어가 아니라, 상태와 조건의 배열이다. 감정은 곡 위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떨림, 빈 공간, 음의 불안정성 속에 침잠해 있으며, 청취자는 어느 순간 그것을 해석하지 않고, 그 안에 잠긴다.


이 글은 그렇게 구성된 보타니카의 감각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며, 네 개의 앨범이 이를 어떻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는지를 추적한다. 각 앨범은 소리의 배열, 정서의 처분 방식, 시간의 조직, 기술의 활용 방법 등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질문을 향해 수렴한다.


자연은 음악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음악처럼 작동하는 자연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가?




Alexander Panos – Nascent (2022)

데이터로 구성된 숲, 구조화된 유기체


미국의 사운드 디자이너 Alexander Panos는 디지털 환경 안에서 생물학적 질서와 유기적 시간성을 음향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데 몰두해왔다. 그의 작업은 소리를 단순한 감정 전달 수단이 아니라, 미세 생명 구조로 구성하려는 시도다.


《Nascent》는 이러한 생태적 접근이 정점에 이른 작업이다. 이 앨범은 전통적인 음악 형식의 선형적 구성에서 벗어나, 마치 식물의 뿌리처럼 얽히고 교차하며 증식하는 사운드 조직을 제안한다. Panos는 소리를 점, 선, 면의 위계가 아니라 미세한 입자들이 생성하고 해체되는 구조로 이해하며, 각 요소는 유기체처럼 반응하고 조율된다.


청취자는 곡의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적 밀도 안에 침전된다. 밀도, 점착성, 투명도 같은 비음악적 감각 기준들이 지배하는 이 사운드 환경은 음악을 감각적 표면이 아닌 생명적인 내장으로 전환시킨다. 감정은 여기서 목적이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란, 이 생태적 구성 속에서 서서히 머물고 흔들리는 감각 조건의 부산물이다.


《Nascent》가 보여주는 보타니카적 감각은 단순히 ‘자연을 닮은 소리’를 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이 앨범은 복잡하고 불균일하며 예측 불가능한 유기적 질서로 설명되는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를 음향의 구조로 옮긴다. Panos에게 있어 기술은 그 질서를 흉내 내는 시뮬레이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생물적 질서를 만들어내는 인공적 생장 장치다.


《Nascent》는 보타니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구조적인 경지 중 하나다. Panos는 사운드를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조건으로 전환하며, 음악이 어떻게 존재를 배치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는 청취라는 행위를 지각의 루틴이 아니라, 감각의 생물학적 재구성으로 재정의한다.




Cash – heal process (2024)

감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감각 생태계


Cash는 감정을 구조로 침잠시키고, 그 구조를 생태로 전환하는 작곡가다. 그는 반응 없는 감각과 정서의 무음 속에서 감정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다.


《heal process》는 감정의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문제의식이 응축된 구조적 실험이다. 전자적 노이즈, 짧은 루프, 희미한 멜로디, 불투명한 텍스처는 단지 청각적 장식이 아니라, 감정이 발화되지 않기 위한 조건으로 배열된다. 이 음악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이 머물 공간, 망설일 시간, 흔들릴 질감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a warm glow」는 스트링의 숨결 같은 입자와 공간적 여백을 통해, 정서가 드러나기보다는 주변을 떠도는 상태로 존재하게 만든다. 감정은 여기서 고조되지 않고, 침전된다. 청자는 그것을 해석하는 대신, 미세하게 흔들리는 밀도 안에 거주하게 된다.


《heal process》가 보여주는 보타니카적 특징은 단순한 자연 모티프나 촉각적 음향 이상의 것이다. 이 앨범은 감정을 하나의 생물적 프로세스로 재조직하고, 정서의 지속 가능성을 감각의 조율 방식으로 전환한다. 그것은 ‘말해지지 않는 상태들’이 어떻게 감각적으로 재현 가능한지를 묻고, 동시에 그 상태들이 기술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배열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기술은 이 작업에서 감정을 해체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지지하는 감각적 프레임이다. 소리의 질감, 저주파의 부유감, 불확정적 루프는 감정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머물게 하기 위한 생태적 장치다. 감정은 표현이 아니라 구조이며, 구조는 곧 감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율이 된다.


《heal process》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보타니카의 본질을 재확인시킨다. 감정을 재현하는 음악이 아니라, 감정이 작동하는 조건을 설계하는 음악. cash는 감정의 해체자가 아니라, 그 감정이 살아남기 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설계자다.




SUJi° – Faltering Wish (2024)

연약함이라는 감각의 생명성, 정서의 유기적 배치


한국의 작곡가 SUJi°는 감정을 외부로 분출하기보다는, 내면화된 떨림과 미세한 균열을 사운드로 포착해 감각 구조로 전환하는 데 집중한다. 그의 작업은 감정을 완성된 정서 상태로 다루지 않고, 감정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조건 그 자체를 탐색하는 데 몰두한다.


《Faltering Wish》는 이러한 작법의 집약체다. 이 앨범에서 감정은 뚜렷하게 표현되기보다, 얇고 느리며 낮은 밀도로 머문다. 텍스처는 불완전하고 사운드는 쉽게 부서지며, 모든 감각 요소는 극단적으로 낮은 에너지 상태로 설계되어 있다. 감정은 중심을 점유하지 않고, 주변에서 흔들리고 망설이며 조용한 방식으로 지속된다.


「solace」와 「adamantium(type 02)」 같은 트랙은 정서를 직접 묘사하거나 감정의 파동을 그대로 변환하려 하지 않는다. 피아노 루프, 스트링의 잔향, 고주파 노이즈 같은 요소들은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머물고 스며드는 방식을 실험한다. 이때 정서는 언어나 상징 이전의 감각, 혹은 아직 발화되지 않은 상태로 청자를 감싼다.


SUJi°는 감정의 구조물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머무르고 흩어질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한다. 그의 음악에서 정서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지속되거나 재조직되는 감각적 상태로 존재한다. 《Faltering Wish》는 감정이 정지하거나 폭발하지 않고, 흔들리며 존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다.


‘약함’ 역시 강조의 대상이 아니다. SUJi°는 가장 낮은 감각 밀도 속에 정서를 분산시키고, 그 위에서 감정이 유지되거나 자연스럽게 소멸되도록 설계한다. 이 비개입적 구성은 감정을 해석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감정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전환한다. SUJi°의 사운드는 감정의 재현이 아니라, 그것이 지속 가능하도록 섬세히 구성된 하나의 감각적 윤리다.




Porter Robinson – Nurture (2021)

감정의 생태화, 보타니카의 정서적 번역본


Porter Robinson은 미국 출신의 전자음악 프로듀서로, 한때 메인스트림 EDM의 중심에 있었으나 이후 자전적 감정, 자연적 감각, 디지털 감성의 결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는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감정을 공간적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Nurture》는 보타니카 감각의 서사를 대중적 언어로 가장 정제되게 번역한 앨범이다. 「do-re-mi-fa-so-la-ti-do」는 반복되는 음계라는 전통적 질서를 빌리되, 그 구조는 끝까지 도달하지 않고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인공적 보컬은 음계 사이를 유영하고, 신스는 물결처럼 일그러지며 감정의 선형성을 해체한다. 이 곡은 감정을 해석하거나 분출시키지 않고,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미세한 여백과 질감을 설계한다. 이는 보타니카가 지향하는 감각의 체류 조건, 즉 감정이 지속될 수 있는 감각적 서식 환경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구현한 사례다.


「Wind Tempos」는 마치 오케스트라적 서사를 예고하지만, 실제로는 드론, 글리치, 잔향이 병렬로 배치되며, 전통적인 시간 구조나 리듬은 사라진다. 감정은 여기서 하나의 환경적 리듬으로 작동하며, 흐름 그 자체로 청자와 상호작용한다. Porter는 감정을 진행시키는 대신, 그 감정이 흔들리는 방식 자체를 음악화한다. 《Nurture》는 보타니카의 실험성을 감각적 대중성으로 전환시킨 사례이자, 실험적 구조가 어떻게 보편적 서사에 안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앨범은 감정을 연출하지 않는다. Porter는 감정 그 자체보다, 감정이 숨 쉬고 흔들릴 수 있는 ‘장소’를 설계한다. 사운드의 울림, 보컬의 불완전한 흐름, 촘촘히 짜인 배경 노이즈는 감정이 서사나 클라이맥스 없이도 감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그는 감정을 해석하거나 전달하려 하지 않고, 감정과 청취자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이는 감정을 구성하는 새로운 청취 방식이며, 보타니카의 대중적 번역 그 자체다.




감각의 조건으로 자라나는 소리들


보타니카는 단지 ‘자연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을 설계하고, 존재를 재배치하는 작동 체계다. 이 네 명의 아티스트는 각각 보타니카의 네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Panos는 소리를 미세한 생명 패턴으로 배열하고, Cash는 정서를 감각적 조건으로 조율하며 감정이 지속될 수 있는 생태를 조직한다. SUJi°는 감정을 고정하지 않고, 흔들리는 텍스처 위에 배치해 감정이 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Porter는 그것을 대중적 서사로 번역해 감정이 머물고 흐를 수 있는 청취의 장소를 설계한다.


보타니카는 자연을 흉내 내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처럼 감각을 배열하고, 시간과 밀도, 반복과 틈으로 존재의 리듬을 다시 짠다.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는 대신, 그 안에 거주하게 된다. 음악은 하나의 구조물이자 생태적 환경이며, 청취는 그 안에 머무는 방식이다.


이 체계에서 기술은 감각을 침범하는 도구가 아니다. 보타니카에서 기술은 감각의 형성 장치다. 잘게 흩어진 입자, 잔향, 불확정적 루프는 감정이 침잠할 수 있는 조건을 섬세히 조율하며, 감정을 파괴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도록 지지한다. 청취는 정보의 해석이 아니라, 감각 조건에 참여하는 행위로 전환된다.


보타니카는 존재의 윤리를 감각으로 번역하는 언어다.

그 언어는 리듬이 되고, 조건이 되며, 지금도 조용히 퍼져나간다.

뿌리처럼 번지고, 잎처럼 흔들리며, 물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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