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디터로 살아가기
여행을 사랑했다. 누구나 쉽게 빠지는 여행이라지만 유난히 유난을 떨었다. 앞뒤 재지 않고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쏟았다. 지금까지 여행에 쓴 돈을 합치면 소형차 한 대는 뽑겠고, 여행으로 보낸 시간은 600일 정도 되겠다.
여행을 힘껏 사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직업이 되었다. 여행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닿게 한다. 대가 없이 만들던 콘텐츠에 돈이 붙으며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행운아들에게는 단골 질문이 따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부러움과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걱정이 섞여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해요?
"글쎄요.. 처음에는 마냥 좋았는데 지금은 여행을 잃어 아쉬워요."
나에게 여행은 휴식이자 놀이였다. 여행을 떠날 때는 계획형 인간의 모습을 내려놓고 즉흥적으로 굴었으며, 지나가고 다가올 시간은 떼어놓고 순간에 집중했다. 현생을 부단히 살다가 떠나는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직업이 된 순간 이전과 같은 여행은 사라졌다. 가볼 만한 곳을 지도에 잔뜩 찍어놓고 무얼 먹어야 하는지, 해가 들어오는 시간은 언제인지, 어떤 경로로 움직여야 효율적인지 수시로 살펴야 한다. 우연이 끼어들 틈도 없이 세세한 스케줄로 급박한 이동을 한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도 사진과 영상을 남기는데 정신이 없다. 언젠가 사진이 필요하지 않을까. 유튜브에 올리면 좋을 텐데. 콘텐츠 생태를 알아서 생기는 미련에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올해 워케이션을 다니며 일과 휴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나처럼 일과 휴식의 경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한 번은 영상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S와 워케이션을 떠났다. 둘 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말이 잘 통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고충도 나누었다. 마냥 좋기만 했던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히 힘들죠. 그런데 일을 하다가도 문득 좋은 순간들이 나타나요. 순수하게 좋아했던 이전의 감정들이 가끔 찾아와요. 그래서 오래 할 수 있나봐요. 벌써 7년이나 되었네요.
S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잃은 것에 대해 자기 연민을 품고 있었다. 소중한 여행을 내어주고 돈을 벌고 있다며 한탄했다. 그렇지만 S의 말처럼 일을 하며 행복한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정보를 얻으려다 택시 기사님과 재밌는 대화가 이어질 때.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다에 물든 노을을 넋 놓고 바라볼 때.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히든 플레이스를 찾았을 때. 혼자 왔냐며 서비스를 두둑이 받을 때. 이름 모를 골목 사이로 해가 비칠 때. 여행자로 순수히 즐거워하던 감정을 불쑥불쑥 느낀다.
행복은 빈도라는 말이 있다. 강력한 한방보다는 소소한 기쁨을 자주 느낄 때 행복하다는 말이다. 직업 만족도도 빈도의 개념에 더 들어맞지 않을까. 어쩌면 현재 직업만족도가 꽤나 높은 걸지도.
일하면서 만나는 소소한 기쁨을 더 크게 받아들여야겠다. 모든 요일을 여행하는 즐거움을 기쁘게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