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슴슴하게씀 Jul 25. 2021

고향에 내려가기 싫은 이유

20210725

20210725 고향에 내려가기 싫은 이유


나는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는다. 한 해 동안 본가에 갔다 오는 횟수를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귀향길은 번거롭고 부담스럽다. 갖가지 짐을 어깨에 메고 기차역까지 가야 한다. 전철이나 버스와 달리 기차를 놓치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더 치르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역에 미리 도착해야 한다. 웃돈을 지불하고 타는 기차는 쏜살같이 빠르지만 본가가 있는 동네에 직통으로 갈 수 없다. 하여 광역 도시의 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탄다. 가끔 동네 친구와 같이 내려가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진이 빠져 서로 말이 없어진다.


도착한 동네엔 그닥 할 일이 없다.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주위의 풍경이 한적하다. 탁 트인 경관이 주는 답답함에 한숨이 나온다. 대중교통은 또 일찍 끊긴다. 딱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도 않다. 반가운 지인일지라도 마주치는 건 썩 반갑지 않아서다. 그저 마침맞게 동네에 있는 친구를 한둘 만나 주변을 배회하곤 한다.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벌써 올라가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일이 있다고 답하며 서울에 올라온다.



읍 단위의 동네에서 나는 꽤나 비상한 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늘 들으며 자랐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받았다. 물론 공부를 전혀 안 해도 되는 천하의 재수 없는 녀석은 아니었고 투자 대비 효율이 괜찮은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밤낮으로 입시에만 매달리는 환경 속에서 성적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게 된 것 같다.


머리가 좀 커지면서 나는 그저 작은 동네에서 잘 나갔을 뿐이라고 이 정도 성적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하다고, 뭣보다 성적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는 동안 서울도 나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오히려 고향에서 더 멀어져 갔다. 성공의 의미를 스스로 확립하지도 못한 채 성공해서 돌아가야 한다는 알량한 생각을 갖고 지냈다. 마땅히 자리를 잡지 못한 나는 아직 돌아가서 내밀 명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금의환향 콤플렉스'는 같은 귀향길을 더 멀고 어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최근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어느 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유튜브를 켰다. 좋아하는 스트리머가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까지 비교하는 영상을 봤다. 그러다 천체에 흥미가 일어서 목성과 토성, 블랙홀, 보이저 탐사선 따위를 찾아봤다. 탐색의 끝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

창백한 푸른 점. 보이저 탐사선이 아득하게 먼 곳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일컫는 명칭이다. 우주로 떠난 탐사선은 여러 가지 조사 자료를 보내왔다. 하나하나가 인류의 진보였다. 지구에서 61억 킬로미터를 벗어났을 때, 매 순간이 막중하던 탐사선은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미지의 천체가 아닌 우리가 사는 지구를 찍었다. 이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 칼 세이건은 동명의 책을 출간해 사진에 대한 소감을 남겼다.


…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다 의미 없는 일이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좁디좁은 고향 동네로 가는 일에 혼자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을 쓰고 있다. 사실은 내 고민이 얼마나 의미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우주까지 나갈 일도 아니다. 그 작은 동네에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본가에 간다. 내가 잘 지내는지 매일 염려하고 기도하는 이들을 보러 간다. 누나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다. 아들에게 별 관심 없는 것 같아도 내가 입대하는 걸 보고 눈이 빨개졌다던 아빠를 보러 간다. 아들이 잘 내려오지 않는 이유가 당신이 맛있는 것도 잘 못 차려주기 때문이라고 괜한 생각을 하는 엄마를 보러 간다.


작가의 이전글 처음으로 중고거래를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