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슴슴하게씀 Aug 01. 2021

방탈출에 진심인 사람

20210801

20210801 방탈출에 진심인 사람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아는 동생을 만나 방탈출 카페에 갔다.


그동안 둘이서 방탈출을 몇 번 해봤지만 성공한 적은 없었다. 마지막 문제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제한 시간 내에 나갔어야 할 문은 늘 반대편에서 열렸다. 직원이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와 사실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것이었다는 그의 설명을 듣고 함께 나와야 했다. 그 후 우리는 집으로 가는 내내 왜 그 문제의 답을 생각 못 했는지, 어디서 시간을 낭비했는지 복기했다. 괜히 문제의 완성도를 탓하기도 했다.


동생과 인터넷으로 찾아본 방탈출 카페에 들어서니 반팔 티에 반바지를 입은 중년의 사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좁은 로비에서 그는 먼저 온 손님들에게 자물쇠와 무전기용 핸드폰의 사용법을 소상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 손님들이 방탈출을 처음 해본다고 하자 사장님의 톤이 더 높아진 것 같았다. 그들을 들여보낸 후, 사장님은 우리에게 사용법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주었다. 다른 방탈출 카페에서 여러 번 사용해봤기에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방에 입장했다.


첫 성공을 기대했으나 늘 그랬던 것처럼 난관을 마주하게 됐다. 한 문제의 답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별의별 풀이를 내봐도 답이 아니었다. 아이디어가 동난 우리는 소품으로 놓인 의자에 앉아 문제가 적힌 종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10분을 넘게 종이만 붙잡고 있는데 난데없이 무전기용 핸드폰이 작동했다.


항상 어려운 거 잘 푸는 손님들이 꼭 쉬운 거에서 헤매더라고요.


사장님의 목소리였다. 곧이어 사장님은 우리가 묻지도 않은 힌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신선했다. 요청한 적 없는 힌트를 주는 방탈출 카페.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컨셉이었다. 보통 힌트를 요청하면 직원들은 우리가 지금 무슨 문제를 풀고 있는지 되묻고는 그제서야 무미건조한 힌트를 주었다. 이와 달리 이곳 사장님은 우리를 CCTV로 쭉 지켜보다 답답함을 참지 못했던 것 같다. 그건 마치 정성스레 내놓은 요리를 엉뚱하게 맛보고 있는 손님들을 보다 못해 나서는 요리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힌트를 듣고도 너무 어렵게 생각해 한참을 헤맸다. 이번에도 탈출에 실패했다. 아쉬움이 남은 우리는 다른 테마의 방에서 한 번 더 도전할까 했다.


이에 사장님은 연속으로 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시간 동안 머리를 굴린 상태로 다른 방에 들어가면 중간에 주저앉아버린다는 이유였다. 이 또한 신선했다. 사실 다른 가게에서 두 번 연속으로 도전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별 말 없이 다른 방에 입장했었고, 사장님의 말처럼 금방 힘이 빠졌었다.


가게를 나와 빙수를 먹고 머리를 식힌 우리는 결국 다시 방탈출 카페로 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2차 시도에는 탈출에 성공했다. 그런데 그걸 성공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째로 들어간 테마는 굉장히 특이한 구조였고 그래서 흥미로웠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그 특이한 구조를 접하는 실시간으로 구조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사장님이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먼저 물어본 게 아니었다. 무전을 듣다 보니 꼭 사장님과 함께 셋이 방에 있는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 문을 열고 로비로 나오니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딱 58분 만에 탈출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참신한 테마였다고 감상평을 말하자 이에 대한 답으로 방탈출 카페에 대한 사장님의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본인은 방탈출을 78번 했고, 무작정 빨리 나오려고 하는 게 아니라 1시간을 오롯이 사용해 최대한 생각하고 즐기면서 탈출하려고 하며, 능력 있는 기술자와 힘을 합쳐 참신한 장치를 여럿 설치했지만 손님들이 자주 고장내서 비용상의 문제로 빼야 했던 게 아쉬웠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서울로 가는 기차 시간에 맞춰 나오지 않았다면 방탈출의 메커니즘에 관해 더 깊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장님은 방탈출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의 진심이 너무 진심이어서 조금은 질릴 뻔했다. 이야기를 듣다 문득 사장님이 일하는 게 질린 적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이 정도 진심이라면 출근하는 매일이 방탈출에 성공한 기분처럼 짜릿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이유로 동생과 둘이서 방탈출에 성공한 경험은 아직 없는 셈이다. 성공을 위해 우리는 또 다른 방탈출 카페에 갈 것이다. 거기서도 방탈출에 진심이던 사장님이 생각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고향에 내려가기 싫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