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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Aug 08. 2021

비상 깜빡이를 세 번

20210808

20210808 비상 깜빡이를 세 번


오랜만에 차를 빌려 남양주로 드라이브를 갔다.


친구 M과 나는 각자 남양주의 한강뷰 카페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매력에 푹 빠진 우리의 안부인사는 한동안 ‘남양주?’였다. 같이 가자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건만 상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일정을 맞춰 남양주로 출발했다.



카 셰어링 서비스로 차를 빌려 운전 연습을 하곤 했다. 장롱면허를 벗어나고 싶었다. 언젠가는 차를 살 거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운전이 일상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꼭 일상이 되지는 않더라도 운전이 사회인의 기본 소양이라 생각했다. 다 제쳐 놓고 사실은 멋들어지게 드라이브를 다니고 싶었다.


빌린 경차의 조수석에 운전병 출신 친구 J를 앉혀 놓고 운전을 해보았다. 운전하는 내내 친구는 차선 변경이 기가 막힌다고, 내비게이션을 정말 잘 본다고 나를 칭찬했다. 원체 칭찬을 잘하는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혹 내가 소질이 있나 싶었다. 나중에 그가 넌지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운전병 시절 후임을 가르칠 때 잘한다 잘한다 해야 사고를 안 내더라는 거였다.


선의의 거짓말을 몇 차례 듣고는 과한 자신감이 생겼다. 첫 사고는 대부분 초보운전 딱지를 떼고 긴장이 풀렸을 때 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 있게 혼자 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박아 후미등을 깼다. 퍽 소리와 동시에 내 멘탈도 깨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반년이 지나서야 운전에 다시 도전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심장이 떨렸다. 그 정도로 겁먹을 일은 아니었다. 벌건 대낮에 규정 속도와 신호를 준수하는 운전자가 큰일을 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물며 보험까지 제일 비싼 걸로 든 상태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사고 그 자체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번에도 운전을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친구에게 옆에 뭐가 튀어나오는지 봐 달라고 당부하며 출발한다. 제한속도를 최저속도로 삼자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건지 자주 뒤차에게 추월당한다. 속도를 맞춰야 되나 고민하자 친구가 그냥 하던 대로 하라고 말한다. 운전 중 그가 하는 이야기를 자꾸 끊고 내비게이션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는 지금 드라이브가 아니라 운전 강사 체험을 하는 셈이다.


그렇게 조심조심 식당에 도착해 주차를 한다. 텅 빈 주차장에서 조그만 경차를 넉넉한 주차선 안에 잘 대보겠다고 난리를 친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노래 두 곡을 듣고 나니 주차가 끝났다고 한다. 진땀을 닦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고생한 뒤에 먹는 밥은 더 달다.


카페로 가려고 차를 끌고 나오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주차장 초입에서 확인해보니 사이드 브레이크도 안 풀었고 사이드 미러도 접혀 있었다. 일찍 알아차린 게 다행이라며 민망한 웃음을 터뜨리고 도로로 나선다.


차선 변경을 할 때 매너 좋게 양보해주는 차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차도 많다. 옆 차선에 어정쩡하게 몸을 들이밀자 경적이 거칠게 울린다. 머쓱하게 합류하고는 두 가지 뜻을 담아 비상 깜빡이를 켠다. 양해를 구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와 선생님도 초보였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하는 나만의 반항이다. 저 경적소리를 마음에 담아두면 안 된다. 신경 쓰여서 또 다른 실수를 하게 된다. 그걸 바로 친구에게 몸소 보여준다. 길을 잘못 들었다. 한참 돌아갈 판이다. 조수석에 앉은 친구는 그래도 이 정도면 드라이브할 만한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동승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재주가 있음을 깨닫는다.


겨우 카페에 도착해서 널찍한 한강을 감상한다. 탁 트인 뷰에 커피가 더 시원하다. 말없이 강물만 보고 앉아 있으니 한바탕 운전해온 길이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 말대로 이 정도면 드라이브할 만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날이 선선해지면 또 와서 루프탑 자리에 앉기로 했다. 그땐 사람이 더 많을 거고 도로도 더 막히겠지만 괜찮다. 비상 깜빡이가 잘 깜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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