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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Sep 05. 2021

심란한 나에게 아우렐리우스가 하는 말

20210905

20210905 심란한 나에게 아우렐리우스가 하는 말


우주는 변화이고, 삶은 의견이다.


명상록을 사서 읽었다. 처지가 비루하고 마음이 옹졸하다 느낀 날이었다.


모 기업의 상반기 채용에 지원하며 지원자들끼리 만든 오픈채팅방에 들어갔었다. 채용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얻은 정보가 도움이 되었으나 최종 면접에서는 불합격 통보를 받고 말았다. 모든 절차가 끝난 뒤 채팅방에선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오가지 않았다. 그러나 미련이 남아 나가지 못한 채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채팅방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인턴 전환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최종 면접에 합격해 인턴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원 전환된 것 같다고 했다. 이제 그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때 나는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심란할 때 가끔 좋은 책을 사서 읽는다. 그러면 책에 녹아든 저자의 지혜가 꼭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명상록을 떠올렸다. 어느 책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언을 접하고는 언젠가 그의 책을 읽겠다 생각했었다. 매장 뒤편 창고에 들어가서 핸드폰을 꺼내 얼른 책을 주문하고 나왔다.



명상록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미덕, 이성, 금욕과 절제, 공동체를 논하며 아우렐리우스는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읽다가 질릴 정도로 그는 여러 사람들의 죽음을 언급한다. 알렉산드로스, 소크라테스, 카이사르와 같은 위인들은 물론이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까지 예로 들며 모두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결국 세상사가 덧없는 일이고 잊힐 일이니 다가오는 일에 자기 자신을 흔들어 놓지 말라는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가 된 후 삶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외적이 로마 제국을 끊임없이 위협하던 시기였다. 그는 추위와 전염병과 같은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적과 직접 마주하며 제국의 운명이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스트레스 또한 상당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아우렐리우스는 몇 년을 지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그는 틈틈이 한두 줄의 비망록을 썼다. 후세 사람들이 이 글들을 묶은 뒤 출판을 위해 붙인 제목이 바로 명상록이다.



막사에서 비망록을 써내려 가는 아우렐리우스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한다. 이제 나는 괜찮다. 그때 면접관의 질문에 그렇게 답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지원했던 자리를 채운 이들이 과연 나보다 나았던 건지 정말 내가 그들보다 못났던 건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 불행만이 굉장히 특별하고 잔인하다고 느끼면서, 나와 남과 이 세상 모두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누구의 농담처럼, 살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또 언젠가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날이 있을 것이다. 불가피한 일이다. 아우렐리우스조차 내면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없어서 같은 이야기를 쓰고 또 썼다. 전과 바뀐 것은 명상록이 책장에 꽂혀 있다는 사실이다. 외부에서 오는 일에 대해 내 안에서 내린 판단이 좀스러울 때 아우렐리우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말할 것이다. 메멘토 모리. 그러면 나는 그의 손에서 사망자 명부를 넘기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얼른 판단을 거두고 그의 말을 따라 하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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