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슴슴하게씀 Oct 10. 2021

나 홀로 언택트 런

20211010

20211010 나 홀로 언택트 런


축하합니다.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10km를 완주하자 애플워치에서 축하 메시지가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바로 멈춰버리면 쌓인 피로감이 확 쏟아질 것 같았다. 되돌아서 산책로를 터덜터덜 배회했다. 차오른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연신 탄성을 뱉었다. 환한 가로등과 주차되어 있는 차만 그 소리를 들었다.



6년 전 가을,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나갔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한강 근처의 역에서 내렸다. 화창한 오전의 강변은 참가자들로 북적했다. 대부분 일행과 함께 온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저들끼리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준비 운동이 끝나고 풀 코스, 하프, 그다음으로 내가 참가한 10km 부문 참가자들이 출발했다. 출발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뛰면서도 계속 그랬다. 대회보다는 축제 같았다. 완주 후 메달을 받고는 그늘에서 쉬고 있던 사람을 붙잡아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여러 장을 찍어주었다. 딱 한 번 참가해본 마라톤 대회의 기억이다.


택배가 왔다. 언택트 런 패키지였다. 러닝용 티셔츠와 바지를 비롯한 갖가지 기념품이 들어있었다. 패키지 맨 위엔 완주 메달이 있었다. 완주하지도 않고 먼저 메달을 받는 게 다소 뻘쭘했다. 대회 기간에 10km를 달리지 않으면 메달만 받고 입을 싹 닫아버리는 꼴이 아닌가.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부담스러웠다. 더 잘 달려야 될 것 같았다.


예행연습으로 10km를 달려보았다. 6년 만이었다. 어떤 페이스로 달려야 할지 감을 잡아야 했다. 정해 놓은 코스를 연습 삼아 익혀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잠실대교까지 지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리에 켜진 조명이 알록달록했다. 주차해둔 차의 앞에, 혹은 차의 열어놓은 트렁크 위에 사람들이 앉아서 판을 깔아 놓고 잠실대교의 불빛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코스를 헷갈려 허벅지가 짜릿하도록 오르막길을 뛰어올라야 했다.


대회 기간, 10km를 달리기로 작정한 날이 왔다. 달리기에 집중하려고 사람이 없는 한밤중의 시간에 나왔다. 제법 비장하게 몸을 풀고는 러닝 어플의 시작 버튼을 눌렀다. 달리는 내내 생각했다. 연습은 한 번 갖고는 택도 없다고. 힘들었다. 반환점도 돌지 않았는데 옆구리가 당기고 다리가 무거웠다. 걷고 싶은 마음을 참고 양 발과 호흡의 리듬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자꾸 딴생각이 들었다. 밸런스는 맞는지 페이스가 느린 건 아닌지 괜한 내 몸만 의심했다.


한밤의 언택트 런은 6년 전과 달리 조용했다. 원체 사람도 없는 시간의 강변에서 나 홀로 대회를 치르는 사람에 대한 응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 경쟁할 사람도 없었다. 저 사람 페이스에 맞춰야지, 저 사람은 앞질러야지 같은 전략은 불가능이었다. 고요한 강변을 달리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책할 수단은 6년 전 달성한 기록뿐이었다. 한번 달성해본 기록이니 또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 기록보다 못했을 때 드는 자괴감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생각으로 느려지는 다리를 추슬렀다. 결과는 겨우 1분 남짓 단축된 53분 26초였다.


홀로 달려야 할 때가 있는 것이었다. 한껏 신난 사람들 틈에서 햇살을 맞으면서 달린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재난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이 달릴 사람도 경쟁할 사람도 없고 중간 지점에서 웃으면서 응원해주는 봉사자도 없으며 그가 건네는 시원한 음료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는 스스로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달렸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고 매번 달리던 코스에서 이 정도면 거의 다 왔다고 스스로 격려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이번 10km의 경험을 기준으로 또 10km를 달릴 생각이다. 연습을 소홀히 해 기록이 아쉽다. 그러나 요행으로 더 빠른 기록을 얻었다면 다음번엔 쉽게 좌절할 테니 정직한 기록이 오히려 나은 셈이다. 계속 경험을 쌓아 나간다면 하프 마라톤에도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언택트 대회가 아니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묻어진 물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