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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Oct 17. 2021

쉽게 판단하지 마라

20211017

20211017 쉽게 판단하지 마라


아직 마라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친구의 말에 일단 약속부터 잡았다. 한때 마라에 빠져 있었던 사람으로서 마라를 전도할 사명감이 생겼다. 사람이 살면서 마라탕은 꼭 먹어봐야 한다. 그것도 마유 소스 듬뿍 넣어서 말이다.


주문한 마라탕과 꿔바로우가 나왔다. 친구가 마라탕을 앞접시에 옮겨 담아 맛보고선 맛있다고 했다. 나는 미리 마련해둔 마유와 고추기름을 섞은 소스를 찍어보라고 제안했다. 그게 진짜 마라를 먹는 거라고 한껏 강조했다. 한입 찍어 먹더니 혀가 얼얼하다고 했다. 그 저릿한 혀에 칭따오까지 얹어주면 완성인데. 그날 낮술을 하며 친구에게 마라의 세계를 알려주었다. 마유는 그렇게 와닿지 않는 듯 찍어먹는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었다. 그럴 수 있지, 나는 내 앞접시에 담긴 마라탕에 마유 소스를 그릇째로 들이부었다.


그러다 내가 마라에 또 빠졌다. 마라 맛이 자꾸 생각나 입에 침이 고였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집에서 혼자 몇 번 주문해 먹었다. 결국 친구에게 연락해 사실 마라샹궈가 진짜다,라고 말하며 마라샹궈까지 같이 먹었다.


마라를 처음 먹었을 때, 데려 간 사람이 마유 소스를 넣어 먹어야 진짜 맛있다고 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얼얼함이었다. 물을 마시면 오히려 더 얼얼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고 혀만 내밀고 있었다. 이건 나랑 안 맞는구나. 그 후 마라를 먹을 때면 나는 안 맞는 것 같다고 거절했다.


이상하게 그 얼얼한 느낌이 가끔 생각났다. 내 혀를 이렇게 때린 녀석은 네가 처음이야, 뭐 그런 이유였을까. 그래서 딱히 또 생각나서 다시 온 건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보니 먹을 게 없어서, 하면서 마라탕 가게에 한번 더 따라갔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먼저 나서서 마라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물론 자리에 앉기 전 셀프 코너에서 마유 소스부터 찾았다.


그때 마유 소스를 한번 더 시도하지 않았다면 혀가 저릿한 즐거움은 지금까지도 느낄 수 없었을 거다. 그전에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고 마라를 아예 먹어보지 않았다면 먹는 즐거움이 하나 사라져 버렸을 거다.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게 제법 오래가기 때문이다. 어떤 뇌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뇌는 0.017초 만에 상대방을 판단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후 접하는 인상보다 더 강하게 남는다.


살면서 첫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을 가끔 만난다. 소위 말해 ‘쎄한’ 사람들 말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별로 그 사람 말이 듣고 싶지 않고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도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럴 때면 안 맞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냥 적당하게 대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대끼다 보면 역시 쎄했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흔치 않게 의외인 사람도 있다. 왠지 적당히 이야기하다 보니 재미있고, 생각했던 거만큼 이상하지는 않다.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보니 이 사람 여러 가지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친해지다 보면 쎄했던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었다.


0.017초로는 사람의 한 모습도 제대로 볼 수 없다.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찰나의 순간으로 단정짓는 건 모진 일이다. 어쩌면 역시 쎄했다고 느꼈던 이들 중에서도 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첫인상이 쎄했기 때문에 역시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마라를 먹다가 그런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그때 마라를 한 번 더 먹어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니까, 마라에 마유 소스를 추가하지 않았다면 넉넉히 넣어 저릿하게 먹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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