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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Oct 03. 2021

묻어진 물음들

20211003

20211003 묻어진 물음들


중학생 때 수업을 듣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생겼다. 내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묻자 선생님이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문제는 그게 좀 길었다. 쉬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복도가 시끌벅적해졌고 교실에선 선생님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만 쳐다봤다. 쉬는 시간을 빼앗긴 친구들의 눈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이해가 되냐 묻는 선생님의 말에 전혀 그렇지 않은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대학에서도 종종 질문을 했다. 반은 질문 점수를 따기 위해서였지만 반은 정말 궁금해서였다. 인문학 교양 강의를 들을 때였다. 인문학적 소양이 쟁쟁한 학생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러자 교수님이 멋쩍게 웃으며 강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말했다. 정적이 흘렀다. 나만 딴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더 자세히 물을까 했지만 그저 아, 그렇군요, 했다.



몇 가지 사례를 더 겪었고 이젠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간혹 궁금한 게 생기면 먼저 고민한다. 이게 필요한 질문일까. 먼저 나온 이야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 후에도 주저한다. 내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아닐까.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들은 이렇게 자기 검열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묻힌다.


이 과정을 통해 두 가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집단이 지정한 시간과 의도를 지키는 데 기여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궁금증을 대폭 감소시킨다. 그렇구나 그저 받아들인다. 이건 이렇겠지 저건 저렇겠지 혼자 답을 내린다. 그 답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혼자 내린 답이니까. 일도 시키는 대로만 한다.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휴학 중에 일했을 때 부서 사람들을 보며 자주 감탄했다. 타 업체와의 회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업무 진행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상대 쪽에서 먼저 계획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고 잘 되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러곤 아주 사소한 사항까지 조목조목 짚어내 물었다. 결과적으로 계획의 완성도가 확 올라갔다. 어떻게 그런 작은 것까지 다 고려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일을 잘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최근에는 유명 건축가의 유튜브를 보았다. 반지하와 옥탑방이 주제였는데 해외의 사례, 영화, 드라마, 스포츠 이야기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영상을 보며 그의 삶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그가 무엇을 접하든 건축학적 의문이 움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 분명 즐거울 것이라 느꼈다. 차분한 말투에 그의 건축을 향한 즐거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재미있고 센스 있게 살고 싶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했던 말을 또 한다. 또 했는데 한 번 더 할 수는 없으니 할 말이 없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지겹다. 시킨 일만 하다 보면 금방 흥미가 떨어진다. 약간만 응용을 해도 난감하다. 결국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똑같은 날들의 반복을 멈추려면 묻어진 물음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다른 인문학 교양 강의를 들었을 때 일이다. 그날도 강의 내용이 어려워서 맨 뒷자리에 앉아 꿈과 현실을 오갔다. 평소 의욕적이던 맨 앞자리 학생이 연거푸 질문을 했다. 잦은 질문에 강의가 툭툭 끊겼다. 의미 없는 질문들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내 옆에 앉은 어떤 학생이 길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확 깼다. 그때 그 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맨 앞자리 그 학생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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