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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Oct 31. 2021

혼자가 익숙하다고 착각했다

20211031

20211031 혼자가 익숙하다고 착각했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그 반대가 무엇인지 얼마 전에 깨달았다.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자다가 몸살 때문에 깬다. 백신을 맞은 다음날 새벽이었다. 자기 전에 멀쩡해도 해열제 두 알 먹고 쌍화탕까지 마시고 자라 그랬는데. 느른하게 일어나 해열제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아빠도 엄마 말을 안 듣다 새벽에 깼던 게 생각나 웃음이 났다. 부전자전이다. 다시 침대에 누워 머리맡의 핸드폰과 이어폰을 찾았다. 노래를 듣고 유튜브를 보다가 새벽 어스름이 창가에 스며들 때쯤 잠들었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하다. 서울에 올라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도 계속 혼자 살고 있다. 자취를 시작한 딱 첫 주만 무서웠다. 밤에 창문을 보면서 강도가 들면 어쩌지 생각했다. 무서운 건 금세 없어졌는데 아플 때 서러웠다. 몸이 으슬으슬하면 이불을 싸매고 누워 일부러 끙, 끙 소리를 냈다. 혼자서 조용하게 아프기 싫었다.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이젠 서러운 것도 무뎌진 것 같다.


혼자 뭘 하는 게 편하다. 밥은 당연히 혼자 먹는다. 대학교 때 자주 아는 사람 없이 강의를 듣다 보니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이 꽤 많았다. 최근엔 비 오는 밤이 그렇게 반가웠다. 비가 오면 창문을 열고 좋아하는 노래를 빗소리와 함께 들으며 값싼 위스키를 홀짝이는 게 낙이었다. 나는 타고난 아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가 익숙하다는 건 착각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이 안 됐다. 노트북에 띄워 놓은 인터넷이 갑자기 끊겼다. 공유기 문제인가 싶어서 핸드폰을 봤는데 핸드폰 데이터도 안 터졌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정적을 느꼈다. 방안이 고요했다. 동네가 평소보다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알 길이 없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북한이 쳐들어왔나. 아니면 SF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서 세상 사람들이 다 사라졌나. 고립감에 신경이 곤두서서 주변의 소리에 온 주의를 기울였다. 두 가지 정보를 얻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게 아니었다는 것과 옆집 남자는 샤워를 할 때 감당할 수 없이 높은 발라드를 연습한다는 것이다.


길었던 한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이 되자마자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인터넷 뉴스의 댓글을 확인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열심히 세상 돌아가는 걸 확인하는 내 모습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익숙한 게 아니라 진짜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혼자 밥을 먹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집에 있는 와중에도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게 아닐까. 피곤한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 스크린을 의미 없이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게 어두컴컴한 방 안에 혼자가 되는 게 싫어서 그런 걸까.


어느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썼다. 그게 사실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은 지독한 일이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견디면서 살고 싶지 않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할 수는 없다. 설령 그에 가깝더라도 순간순간의 일일 것이다. 그 나머지 순간들은 전부 알게 모르게 외로운 것이다. 삶의 기본값이 외로움이라는 견디고 싶지 않은 결론이다.


진짜 혼자가 되는 걸 견뎌보려고 시도해 보았다. 견딜 수 없는 결론에 해탈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건강을 위해서였다. 늦게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잠들기 전 핸드폰을 멀리 두었다. 눈을 감아도 잠은 안 오고, 핸드폰을 들어 유튜브를 새로고침 하고 싶은 생각이 잔뜩 들었다. 꾹 참았다. 잡생각을 하다 사람들이 다 사라진 세상을 상상했다. 끔찍했다. 넓은 세상에 끝이 안 보였다. 그게 도저히 못 참고 일어나 유튜브를 볼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다. 혼자가 되는 건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렵다. 그래서 못 견뎠다.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다. 다음번엔 핸드폰을 덮어놓고 애써 그 세상을 거닐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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