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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Nov 07. 2021

꽈배기에 설탕을 묻히지 않는 이유

20211107

20211107 꽈배기에 설탕을 묻히지 않는 이유


간만에 집 앞 꽈배기 가게에 갔다. 자주 가던 가게였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사장님이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네, 뭐, 취업준비 하느라… 웃으면서 답을 얼버무렸다. 진열대를 얼른 훑어본 뒤 주문을 했고 꽈배기를 봉투에 담는 동안 사장님과 날씨가 많이 춥다는 이야기를 좀 하다가 봉투를 받아 들었다. 결제를 한 후 사장님이 생글생글 웃으며 맛있게 드시라고 했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잘 먹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집에서 꽈배기를 한입 베어 물면서 생각했다. 휴. 당분간 그 가게는 또 못 가겠다.


이사를 온 후 꽈배기가 소소한 행복이 됐다. 집 근처에 꽈배기 가게가 있다는 게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달았다. 신나게 사 먹다 보니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았다. 사장님은 친절했다. 퇴근을 하고 온 건지, 명절에 집에는 내려가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다. 원하는 꽈배기가 다 팔려서 없으면 같이 아쉬워했고 서비스로 꽈배기 몇 개를 더 담아 주기도 했다.


그런 사장님을 보는 게 슬슬 부담스러웠다. 사장님의 친절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몸이 꽈배기처럼 꼬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자주 오다가는 사장님과 너무 가까워질 것만 같았다. 이후 꽈배기를 먹는 날은 점점 뜸해졌고 가게 앞을 지날 때엔 발걸음을 더 빨리 하게 됐다.


가끔 꽈배기가 먹고 싶으면 다른 가게를 찾았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가게 사장님은 달랐다. 시종일관 무표정했다. 꽈배기가 없으면 없는 대로 반죽이 없어요, 한마디가 끝이었다. 서비스는 없었고 딱 지불한 만큼 받았다. 자주 가던 가게보다 맛도 덜했다. 그럼에도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가게를 꼽자면 무뚝뚝한 쪽의 손을 들게 된다.



어떤 가게든 자주 찾다가 점차 소비자와 판매자 이상의 사이가 될 것 같으면 그 후로는 편하게 들어갈 수 없었다. 맛이나 서비스가 맘에 안 드는 건 아니었다. 단지 친절함이 부담스러웠다. 친근한 미소와 인사에 기분이 좋긴 했지만 그 이상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자주 가던 미용실이 제일 편했다. 아무 말없이 머리를 자르고 난 후 웃으면서 서로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친절한 가게는 부담스럽고 그렇지 않은 가게는 편하다. 아이러니하다. 왜 친절한 게 부담스러울까. 사장님의 표정과 말투를 떠올리면 괜히 미안해진다. 호의를 거절하는 것만 같다. 판매자라는 역할 너머의 사람을 보려 하지 않는, 자본주의에 찌든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억지로 부담감을 안고 갈 수는 없다. 알아주고 반가워해주면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이상 소소하게 꽈배기를 사 먹는 데 몸을 배배 꼴 수는 없는 것이다. 친절한 사장님도 그런 건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꽈배기가 먹고 싶을 땐 그렇게 생각하며 집 앞 가게에 간 날이 며칠 정도 지났는지 세어 본다.


사장님이 꽈배기에 설탕을 묻혀 드릴지 물어볼 때마다 매번 괜찮다고 답한다. 그 답엔 사장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친절한 사장님에게는 미안해서 직접 말할 수 없는 이야기다. 꽈배기가 설탕을 묻히지 않아도 충분히 달고 맛있어요. 그러니까 사장님도 조금만 달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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