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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May 16. 2021

거리두기의 적정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20210516

20210516 거리두기의 적정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비가 내릴 듯 흐린 날에 자격증 시험을 치러 근처의 고등학교에 갔다.


제법 큰 4층 건물이었다. 실내로 들어가 배정받은 교실로 향하며 복도를 따라 걸었다. 교실 표찰이 일정한 간격으로 벽 위 편에 붙어 있었다. 저 멀리까지 이어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실의 열린 문틈으로, 먼저 온 사람들이 본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교실에 들어가 자리를 확인한 후 짐을 풀고 앉았다. 이런 류의 시험이 늘 그렇듯, 정해진 입실 시간이 지나고서도 시험 시작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늘 그렇듯 조용한 시간이었다. 멍하게 앉아 사람들이 제각기 준비해온 자료를 훑어보는 모습을 보았다. 곧 감독관이 들어오며 작게 인사를 했다. 시험을 치러 와서 감독관의 인사에 꼬박 대답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정리를 마친 감독관이 수험생을 호명하며 간단히 출석 여부를 확인했다. 차례를 기다리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새삼 교실의 자리 배치에 눈길이 갔다. 다섯 줄, 한 줄마다 다섯 개 정도. 스물다섯 개가 안 되는 자리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넓은 교실에 얼마 없는 책상 사이의 거리가 꽤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문제를 다 풀고 고개를 들어보니 퇴실이 가능한 시간까지 한참 남아있었다. 그동안 고등학교 시절의 교실을 떠올려보았다.


서른다섯을 넘는 인원이 한 교실을 썼다. 두 줄을 붙여 짝을 짓고 세 분단을 만들었다. 한 줄마다 여섯 명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물함이 놓인 자리를 빼고 난 교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맨 뒷자리가 아니면 기지개를 마냥 시원하게 펼 수 없었다. 짝이 움직이는 데 의도치 않게 방해가 되기도 했다. 어쩌다 한번 짝 없이 자리 배치를 받았을 때, 책상 두 개를 혼자 쓰던 편안함이 기억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넓은 공간이 쾌적하게 느껴졌다. 이 글도 퇴실을 기다리면서 시험지 뒷면 여백에 후루룩 써내려 갔다. 거리가 좁았다면 문제를 풀던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였을 것이다. 그들도 객관식 문제밖에 없는 시험장에서 분주하게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 집중이 흐트러져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글을 대강 다 쓰고도 시간이 남아,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로 보았다. 시험지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렇게 띄엄띄엄 앉아서 학교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널찍하게 앉아 요즘 말처럼 ‘선 넘는’ 일 없이 잘만 지내고 있을까. 얼마만큼의 거리를 원할까. 멀기를 원할까, 아니면 가깝기를 원할까.


퇴실해도 좋다는 감독관의 안내를 듣자마자 짐을 챙겼다. 여러 사람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무리에 섞여 교실을 나왔다.


과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우산을 챙겨 오지 못한 몇몇이 비를 맞으며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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