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8
저기요 잠깐만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떤 젊은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종각역 앞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도를 알지는 못하지만 이 사람이 곧 도를 아시는지 물어볼 것이란 사실은 알았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쪽 기운이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로 굉장히 좋아요. 지금은 모르시겠지만 나중에 분명 알게 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되돌아서 사람들 사이로 횡, 가버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막 스무 살이 되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때 겪은 일이다. 나는 아직 그 사람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나를 찾기 위해 먼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이었을까. 정말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용한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사람의 모습만 했을 뿐 사실 사람이 아닐지도. 나중에 어떤 일로 뭘 알게 되는 걸까.
아직 나중은 오지 않은 것 같다. 그 나중이 너무 궁금해서 계속 그때 일을 생각하고 살았다. 그때의 경험을 모티브 삼아 단편소설을 써 학교 수업 과제로 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하다지만 믿음이 부족한 나에겐 다른 사람의 인정도 중요하다. 나는 결정을 시원하게 못 내려서 늘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러 다닌다. 뭔가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런 탓에 취준 중 최종 합격이 아닌 서류나 1차 합격만 되어도 안내문을 계속 읽게 된다. ‘귀하와 같이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재에게…’로 시작하는 글을 읽으면 내가 그동안 맞게 해온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심지어는 정말 역량이 있는 사람 같아 우쭐한다. 하지만 오래 읽고 앉아 있으면 역효과가 난다. 내 귀가 팔랑거리는 게 느껴지고 줏대 없는 소시민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어 뒷맛이 씁쓸하다.
뭐가 됐든 잘하고 있다는 말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힐링’에는 싫증을 느끼고 현실적인 조언을 더 환영하는 요즘 분위기지만 나는 ‘힐링’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잘하고 있다는 말은 주문처럼 작용할 수 있다. 잘하고 있을 때엔 으쓱해져서 더 잘하게 될 거고 잘하고 있지 않을 때엔 힘을 내서 앞으로 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언제든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아직 종각역에서 만난 그 여자를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억할 거다. 믿습니다. 주변에도 이 경험을 가끔 이야기한다. 아는 형이 듣고는 그 사람이 도를 아시는지 처음으로 영업을 개시하려다가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의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그래도 믿습니다. 어쩌면 그 여자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서 사실 그때 일은 다 장난이었고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할 수도 있다. 그래도 믿습니다. 아니면 유능한 의사가 내 뇌를 살펴보고는 기억이 조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믿습니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나중에 안다는 게 이거였구나’ 할 때까지 믿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