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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Dec 05. 2021

외모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20211205

20211205 외모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며칠 동안 눈썹이 너무 가려웠다. 하지만 긁을 수 없었다. 긁으면 안 됐다.


눈썹 문신을 했다. 시술 후 눈썹을 피해 가볍게 세수를 하고 땀이 나지 않게 관리하라고 했다. 며칠을 머리도 안 감고 지저분하게 살다가 조심조심 씻었다. 물기를 닦고 거울을 보니 시커먼 눈썹이 어색했다.


외모가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몇 번의 면접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몇 가지 질문으로 지원자들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내 주변 사람도 심지어 나도 나의 내면을 잘 모르는데 살면서 처음 본 면접관이 내 속을 꿰뚫어 볼 수 있을까. 그럼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점집을 차려야 하는 거 아닐까. 면접관도 사람인데 피상적인 것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일단 합격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요소인 외모에 신경을 썼다. 비대면 면접에 자율 복장이라도 꼭 정장을 입었다. 조명도 샀다. 구김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제일 밝게 해서 얼굴 쪽으로 쐈다. 내 모습이 잘 나오는 각도를 찾기 위해 노트북 상판을 조절하느라 오랜 시간을 들였다. 눈썹 문신을 한 것도 그런 이유다. 원래의 듬성듬성한 눈썹보다는 진한 눈썹이 면접관들에게 믿음직해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는 면접 내내 한결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반의 채비를 한 화면 속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이스한 사람이다, 하고 계속해서 자기최면을 걸었다.



신경 쓴 외모가 면접관에게 먹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먹혔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정장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있었다. 차려입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집 밖에 나갈 일 없이 잠옷만 입고 후줄근하게 있던 꼴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성실하고 어엿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고 싶을 때 써먹는 방법 중 하나는 샤워를 하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집 밖에 나가 정처 없이 돌아다녀도 좋고 사람을 만나러 가면 더 좋다. 감각 있는 친구에게 매번 옷을 못 입는다고 놀림받곤 하지만 이때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입어도 된다. 면접관은 나 하나이고 나에게만 합격을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면접관은 평생 봐온 면접자인데도 늘 오락가락하고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러면 일이 전혀 진행될 수 없다. 그럴 때 외모에 신경을 쓰는 요령으로 조금이라도 판단하기 쉽게 해주면 수월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집 근처의 어느 초등학교 울타리에 격언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가능한 한 옷을 잘 입어라. 외모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 꿈이나 노력을 이야기하는 옆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주제였다. 난데없으면서도 진중한 조언이었다. 그냥 아무 말이나 써서 채운 건가 했다. 검색해보니 탈무드 인맥관리 17계명 중 하나라 해서 놀랐다. 그런데 17계명인지 확실하지 않다. 사이트마다 계명 수가 14, 16, 17, 18 제각각이었다. 정말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혹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안 들어줘서 억울했던 누군가가 관심을 끌기 위해 탈무드를 갖다 붙인 게 아닐까. 블로그와 인터넷 기사를 비롯해 여러 사이트에서 탈무드 인맥관리 N계명을 인용하고 있었다. 그걸 보며 또 생각했다. 외모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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